화장품 제조업체 A사는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정해진 고정 연장근로수당, 이른바 고정OT(Overtime)만 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직원들이 고정OT를 넘겨 연장·야간근로를 했고, 받지 못한 수당은 310명분 1억2300만원에 달했다. 포괄임금이 실제 노동시간을 가리는 장치로 쓰인 셈이다.
고용노동부는 이같은 포괄임금 오남용 의심 사업장 101곳을 대상으로 지난 2월 26일부터 약 두 달간 기획감독을 벌인 결과, 포괄임금 활용 사업장 79곳 중 34곳(43.0%)에서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미지급이 적발됐다고 28일 밝혔다. 이들 사업장의 체불액은 4억4800만원으로 확인됐다.
이번 감독은 언론 보도나 외부 문제 제기, 청원, 익명신고센터 제보 등을 토대로 포괄임금 오남용이 의심되는 사업장을 선정해 이뤄졌다. 감독 대상 업종은 음식점·숙박 등 서비스업과 정보통신(IT) 업체가 많았다. 포괄임금 활용 사업장 79곳 중 고정OT를 활용한 곳은 73곳, 정액급제나 정액수당제를 활용한 곳은 6곳이었다.
포괄임금은 실제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미리 정해 지급하는 임금 산정 방식이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직무에서 활용돼 왔지만, 현장에서는 실제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하고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는 '공짜노동' 문제로 이어져 왔다.
감독 결과 포괄임금을 이유로 한 수당 미지급뿐 아니라 장시간 노동 관리 부실도 함께 드러났다. 포괄임금을 활용하면서 연장근로 등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한 사업장도 34곳이었다. 임금대장과 임금명세서에 실제 일한 연장·야간·휴일근로시간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은 노동시간 기록·관리 위반 사업장은 27곳으로 조사됐다.
수당 미지급 외에 임금·퇴직금 등 금품 체불까지 포함하면 위반 사업장은 68곳, 체불액은 약 15억4200만원으로 늘어난다. 기타 노동관계법령 위반까지 모두 포함한 법 위반 사업장은 77곳으로, 포괄임금 활용 사업장의 97.5%에 달했다.
가금류 가공업체 B사는 업무량이 많아 상시적으로 연장·휴일근로가 이뤄졌는데도 고정OT 수당 외에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휴일근로수당도 일부 주지 않았다. 이 업체의 체불액은 7명분 7800만원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C사도 실제 근로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채 고정OT분만 지급했다. 고정OT를 초과한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2500만원이 14명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연장근로 한도 위반 사례도 확인됐다. 소프트웨어 개발·공급업체 D사는 전산 오류가 발생하면 긴급 보수 등으로 휴일근무가 발생했지만 휴일근로시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연장근로 한도를 25회, 123시간 초과했다. 기술서비스업체 F사는 사업 성장으로 업무량이 계속 늘었는데도 별도 조치 없이 연장근로 한도를 44회, 698시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법 위반 사업장에 근로시간 위반 시정과 체불 금품 전액 지급을 지시했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사법처리 등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시정이 완료된 사업장도 법 위반이 근절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재감독하기로 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감독 이후 제도 개선에 나섰다. 휴일근로수당과 연차유급휴가 미사용수당을 실제 휴일근로, 연차휴가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정액으로 지급하던 방식을 폐지했다. 노동부는 포괄임금제 개선 컨설팅과 노무관리 지도 등을 통해 개선 사례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감독도 상시 체계로 전환한다. 노동부는 지난 14일부터 포괄임금 오남용 익명신고센터 제보가 잦은 구로·가산 디지털단지에 대한 감독에 착수했다. 앞으로 매달 제보 내용과 건수를 분석해 감독 대상 지역을 새로 선정하고, 연말까지 권역별 릴레이 감독을 이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익명신고센터 제보 활성화를 위해 적극 홍보하고, 직장인 전용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앱을 통해서도 쉽게 접속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가 온전히 지급되는 것은 노동시장 정상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포괄임금이라는 이유로 법에서 정한 노동의 대가가 부정돼서는 안 된다"며 "익명신고센터를 통한 포괄임금 오남용 제보가 늘고 있는 만큼 현장의 요구를 신속히 반영해 적극적으로 감독·개선해 공짜노동을 근절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