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빼앗긴 혁신에 법의 방패를”…기술보호 판이 바뀐다
||2026.05.27
||2026.05.27
'기술탈취'는 우리 중소기업 생태계를 위협해 온 고질적인 병폐다. 피땀 흘린 혁신 기술을 빼앗아 기업을 경영 악화와 존폐의 기로로 내몰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폐단을 근절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으나, 중소기업 기술탈취 피해는 한 해 약 300여건, 건당 피해액은 18억원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심각하다. 이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예산과 보안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역량은 대기업의 70%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새 정부에서는 기술탈취에 대한 '실효적 구제'와 '원스톱 해결'이라는 수혜자 중심의 기술보호 정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과거 기술탈취 대응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부처별로 분산된 분쟁대응 체계였다. 피해 기업은 분쟁 유형에 따라 여러 기관을 찾아다녀야 했고, 그 과정에서 신고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였다. 이러한 현장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1월, 중기부·산업부·공정위·지재처·경찰청·국정원 등 기술보호 핵심부처가 원팀으로 뭉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이 전격 출범했다.
그리고 범부처 대응단의 '1호 성과'가 바로 지난 3월에 개설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신문고'다. 기술탈취 신문고는 중소기업 정책 추진 체계를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다. 기술탈취 피해기업은 신문고에 신고만 하면 전문가의 검토와 부처 연계를 통해 빠른 구제를 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 이러한 현장의 기대와 분위기는 기술탈취 신문고 개설 한 달여 만에 연간 신고 수준을 웃도는 약 30건의 기술탈취 신고가 접수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기술탈취 소송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사법적 대책도 마련됐다. 기술탈취 소송에서 중소기업은 피해 사실과 손해액을 입증해야 하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핵심 증거를 상대방이 독점하고 있어 입증이 어렵고, 합리적인 손해배상 산정을 위한 자료수집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조사해 증거를 확보하는 '한국형 증거개시제도(K디스커버리)' 도입을 골자로 한 '상생협력법'이 개정됐다.
특히 법원이 행정부의 행정조사 기록이나 디지털 증거자료까지 제출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법원이 사건의 본질을 조기에 파악하고 현실적인 손해배상 판결을 위한 자료 수집이 가능해졌다.
정책 방향 역시 예전보다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 기존 '시정권고' 중심 제재를 '시정명령'으로 강화하고, 기술을 탈취하면 금전적으로 손해가 더 크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최대 50억원의 과징금 도입도 추진 중이다. 또 '직권조사'를 신설해 피해기업이 보복 우려 없이 신고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과제도 적지 않다. 증거개시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전문인력 확보, 법원의 운영 가이드 마련, 비밀유지 절차 정비 등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제도 도입 자체보다 '피해기업이 실제로 보호 받았다'는 경험을 얼마나 빠르게 만들어내느냐가 정책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기술은 기업의 생명이자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 전환에 따라 이제 중요한 것은 즉각적인 실행과 이에 따른 성과다.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고 피해기업의 실질적 구제 사례가 축적될 때, 우리나라의 기술보호 체계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고문·서울대 객원교수 swson@yulc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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