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값 롤스로이스’, 벤츠·아우디 꺾었다… 유럽 고가품, ‘차이나 럭셔리’에 와르르
||2026.05.26
||2026.05.26
중국에서 ‘유럽 고가품 브랜드가 최고’라는 등식이 무너지고 있다. 그 자리를 중국 토종 브랜드가 빠르게 메우는 중이다. 중국 기업에서 만든 17만 달러(약 2억5800만 원)짜리 전기 세단이 메르세데스 벤츠 최고급 모델 마이바흐와 어깨를 견준다. 중국산 토종 향수는 샤넬 넘버 5보다 비싼 980위안(약 21만9000원·30㎖ 기준)에 팔린다.
25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기업 화웨이와 장화이자동차(JAC)는 고급 세단 시리즈 맥스트로의 최신 모델 S800을 선보였다. 맥스트로 S800은 중국판 롤스로이스로 불린다. 40인치 스크린과 차량 내부 40개 스피커, 스마트폰처럼 주먹을 쥐는 제스처로 문을 여는 기능처럼 기존 유럽 차량 브랜드가 주지 못했던 과시형 경험을 제공한다.
큰 스크린을 뺀 기본형 모델은 10만4000달러(약 1억5800만 원)부터 시작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세단 라인 마이바흐 시작가 대비 절반 수준이다. 옵션을 모두 더한 최고 모델 가격도 17만3000달러(약 2억6300만 원) 수준이다. 미국에서 팔리는 기본형 롤스로이스 가격 절반 정도다. 맥킨지 출신 자동차 컨설턴트 토마스 룩은 WSJ에 “모든 기능을 꽉 채운 차를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았다”며 “마이바흐와 BMW 7시리즈에 분명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고 했다.
맥스트로 시리즈는 2025년 5월 이후 출시 1년 만에 누적 인도량 1만7000대를 넘어섰다. 화웨이에 따르면 4월 기준 중국에서 팔린 고급차 3대 중 1대가 맥스트로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맥스트로를 구매한 변호사 리마오자이를 인용해 “이 차는 BMW, 벤츠, 아우디만이 고급차라는 중국인들의 낡은 믿음을 바꿔놓았다”고 했다. 화웨이는 다음달 30만 달러(약 4억5600만 원)에 육박하는 초고급형 모델을 새로 내놓을 예정이다.
프리미엄 제품군에서 중국산 토종 브랜드를 선호하는 흐름은 자동차를 넘어 화장품과 의류 등 일상 생활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중국 메이크업 브랜드 마오거핑은 중국인 얼굴형과 전통 미학을 결합해 디올, 아르마니 뷰티와 백화점 1층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 브랜드는 2024년 매출 38억 8469만 위안(약 8702억 원)을 기록해 3년 만에 2.5배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 앤 설리번이 집계한 중국 프리미엄 뷰티 상위 15개 기업 가운데 유일한 토종 브랜드다. 향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중국 브랜드 도큐먼츠는 일부 제품은 30㎖ 작은 병이 980위안으로, 중국 내 단위 가격 기준 샤넬 넘버5보다 비싸다. 이 브랜드는 일반적인 프랑스식 조향 방식 대신 중국 정원과 차, 사찰 향을 상품화했다.
고급 의류에서는 지클(ICICLE)이 로고 대신 천연 소재와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 브랜드 캐시미어 코트는 한 벌에 8000~2만 위안(약 179만~448만 원)으로 한국 시장에서도 고가에 속한다. 그럼에도 중국 연 매출이 30억 위안(약 6720억 원)을 넘겼다. 팬데믹 이후 2023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핸드백에서는 송몽이 알리바바 광군제 당시 프리미엄 채널 티몰에서 미국 유명 브랜드 코치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또 다른 중국 토종 브랜드 트루젠은 3위였다. 송몽은 미니멀한 디자인 가죽 가방을 500달러(약 76만 원) 안팎에 판다. 세계 최대 사치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상하이 방문시 송몽 매장을 직접 둘러봤다.
중국 토종 브랜드가 힘을 키우는 사이, 외산 고가품 브랜드 실적은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24년 중국 본토 개인 고가품 시장은 18% 안팎 줄었다. 지난해에도 여기서 3~5% 추가로 감소했다. 특히 품질과 디자인에서 고가품 핵심 요소를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를 제시하는 대중 명품 매스티지(masstige) 브랜드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오로지 에르메스 최상위 가죽제품이나 반 클리프 아펠처럼 대체 불가능한 희소성을 갖춘 영역만 경쟁력을 유지했다.
구찌 모회사 케링 그룹은 2024년 매출이 12%, 반복영업이익이 46% 감소했다. 구찌 한 브랜드에서만 매출이 23% 줄었다. 버버리는 2025회계연도 조정 영업이익이 전년 4억1800만 파운드에서 2600만 파운드로 94% 급감했다. 까르띠에 모회사 리치몬트는 지난해 중국 매출이 23% 감소했다. 자동차 시장 충격은 더 크다. 포르셰는 2025년 1~9월 영업이익률이 14.1%에서 0.2%로 추락했다. 포르셰는 오는 연말까지 중국 내 대리점 절반을 철수할 계획이다.
NYT는 벤처캐피털 관계자를 인용해 “수십 년간 서양 고가품 브랜드가 고급 소비 시장 서사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오늘날 중국 소비자는 더 이상 서양 문화를 우러러보지 않는다”고 했다. 후룬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중국 자산가 78%는 호텔에 머물 때 글로벌 체인 대신 ‘독특한 문화 체험’을 선호한다. 토종 핸드백 브랜드 트루젠 창업자 청바오화는 “과거 우리는 서양 브랜드 마케팅의 꼭두각시였다”며 “교육수준이 높은 소비자들이 이념적 각성을 겪었다”고 했다. 이 브랜드는 ‘중국산을 애용하자’는 식으로 배타성을 강조하지 않고, 가죽 공장 여성 노동자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공감을 얻었다.
중국 내수 고가품 약진이 단순한 애국 소비나 불황형 대체재 선택을 넘어선 구조적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 성장기 다른 국가에서도 보였던 무조건적인 외산 추종을 벗어나 자국 문화 자부심을 소비에 투영하는 성숙기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소비학적으로 현재 중국은 1990년대 일본이 거품 경제 붕괴 직후 걸어간 수순에 접어들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루이뷔통·에르메스 가방을 살림 1순위로 꼽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고품질 자국 브랜드 소비로 돌아섰다. 도요타는 1989년 미국에서 처음 선보인 렉서스를 1997년 자국에 역수입했고, 같은 시기 미니멀리즘을 내세운 무인양품(MUJI)도 빠르게 매장을 늘렸다. 기술력과 소재, 자국 서사로 무장한 중국 브랜드가 부상한 방식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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