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무너진 日 경영…종신고용이 만든 ‘문어발 기업’의 최후
||2026.05.26
||2026.05.26
[디지털투데이 유승아 인턴기자] 일본 기업의 광범위한 사업 다각화는 종신고용과 내부 재투자 중심의 조직 구조에서 비롯되며, 이 구조가 인공지능(AI)·전기차(EV) 같은 급변 산업에서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5일(현지시간) 온라인 매체 기가진에 따르면, 경제·기술 분야 필자인 데이비드 옥스((David Oks)는 일본 기업이 여러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배경을 기업 구조 차원에서 분석했다.
데이비드 옥스는 일본 기업의 다각화가 다른 나라 복합기업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짚었다. 인도의 대기업 집단은 비교적 단순한 산업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고, 독일에서도 광범위한 사업 확장은 지멘스 같은 대형 복합기업에 국한된다. 한국 재벌 역시 다각화를 추진해 왔지만 국가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성장한 사례가 많아, 일반 기업 전반에서 폭넓게 사업을 벌이는 일본과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데이비드 옥스는 핵심 원인으로 일본식 고용·자본 구조를 꼽았다. 일본 기업은 미국의 성과주의적 경영과 달리 '연공주의' 성격이 강하다. 신입 사원을 대규모로 채용한 뒤 정년까지 고용을 유지하는 평생직장 방식을 채택해 왔으며, 경영난에도 해고보다 전환 배치나 계열사 전출로 대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근속 연수 중심의 보상 체계 역시 이 구조를 뒷받침한다.
노동조합·이사회·주주 구조도 외부 압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기업별 노조가 중심이고 이사회 내 내부 경영진 비중이 높은 데다, 일본 기업 간 상호 지분 보유와 주거래은행 중심 자금 조달이 맞물려 주주환원 압력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 때문에 기업 이익이 주주에게 돌아가기보다 사업 재투자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비드 옥스는 이 같은 기업을 일본형, 즉 J형 기업으로 명명했다. 종신고용, 개인 성과 보상의 부재, 외부 자금 조달에 대한 소극적 태도가 J형 기업의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주주 이익과 전문화에 집중하는 서구 기업은 H형 기업으로 구분했다.
차이는 현장 운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H형 기업은 관리자와 상층부가 생산라인 문제를 해결하는 수직형 구조인 반면, J형 기업은 현장 작업자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수평형 구조에 가깝다. 이를 위해 직원은 특정 직무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업무를 두루 이해해야 하며, 교육과 순환 배치가 필수다.
데이비드 옥스는 바로 이 구조가 사업 다각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직원을 종신고용하기로 약속했다면 현재 일이 의미를 잃었을 때도 새로운 일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수익성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고 범용성 높은 인력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라면 새 사업 진출에 이익을 재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기업 생존 기간을 늘리고 남는 인력을 계속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력을 줄이지 않고 기업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사업 확장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다만 이 구조의 강점은 산업에 따라 갈린다. 자동차·공작기계·산업용 로봇·광학·정밀 소재처럼 점진적 개선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J형 기업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수요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현장 중심의 개선이 경쟁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프트웨어·인터넷 플랫폼·AI·전기차처럼 시장 변화가 빠르고 톱다운 방식의 전략적 결단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H형 기업이 유리하다. 데이비드 옥스는 일본 기업이 일부 제조 분야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이면서도 다른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구조적 약점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일본 기업이 실제로는 수평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있으며, 소프트웨어 업계의 경우 연공서열·승인·보고 절차가 강하게 작동해 개발자들이 상층부 결재 과정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번 논의는 일본 기업의 다각화가 단순한 경영 취향이 아니라 고용·자본·조직 운영이 맞물린 구조적 결과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같은 구조가 정밀 제조업에서는 강점이 될 수 있지만, AI·전기차처럼 빠른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산업에서는 오히려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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