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에볼라·한타 공포 부른 ‘원조 삭감’… 선진국이 아낀 돈, 글로벌 방역 공백 ‘부메랑’
||2026.05.22
||2026.05.22
코로나19 팬데믹 기억이 여전한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바이러스 공포가 되살아났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를 덮친 에볼라, 남미 크루즈선에서 번진 안데스 한타바이러스, 미주 황열과 오로푸체 바이러스까지 치명적인 국지성 감염병 발병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팬데믹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서 국제 보건 전문가들은 최근 창궐하는 국지성 감염병들이 코로나처럼 새롭게 등장한 정체불명 병원체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빈곤국에서 감염병을 확산 전에 발견하고, 차단하던 감시망이 주요 선진국 원조 삭감과 맞물려 무너진 결과에 가깝다는 분석에 이들은 의견을 모았다.
21일(현지시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5년 잠정 공적개발원조(ODA) 통계 기준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및 준회원국 ODA는 1743억달러(약 261조원)로 작년보다 23.1% 줄었다. 역대 최대 낙폭이다. 특히 미국 원조가 56.9% 급감했다. 미국·독일·영국·일본·프랑스 5개국은 지난해 전체 감소분 가운데 95.7%를 차지했다. ODA는 보건 전용 예산은 아니지만, 방역 전제 조건인 위생·식량·인도적 지원이 모두 이 예산에서 나온다. ODA 감소는 공여국이 저소득국에 쏟는 돈이 동시에 빠지는 신호로, 통상 보건망 토대가 흔들리는 뜻으로 해석된다.
보건 분야만 따로 떼어봐도 원조 삭감에 따른 충격은 상당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부 보건 원조가 2023년 대비 2025년에 30~4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보건 위생에 취약한 108개 중·저소득국은 WHO 조사 결과 일부 국가에서 백신 접종, 질병 감시, 보건 비상대응 같은 핵심 서비스를 올해 최대 70%까지 축소하겠다고 답했다. 50개국은 보건 인력을 해고하거나, 관련 훈련을 중단했다고 보고했다. 감염병에 대응하는 첫 단추인 ‘초기 탐지부터 격리와 접촉추적에 이르는 모든 단계 지원 여력이 줄었다.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세가 가장 매서운 콩고민주공화국 사례를 보면 이런 흐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콩고에서 에볼라는 익숙한 병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콩고 보건 인력들이 지난 50년간 에볼라를 17차례 겪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게 대응할 “자원이 없다”는 호소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2024년 콩고에 14억달러(약 2조1100억원)를 지원했다. 지원금은 지난해 4억3000만달러(약 6500억원)로 거의 반에 반 토막이 났다. 올해는 2100만달러(약 320억원)로 줄었다. 2년 만에 98.5%가 사라졌다. 영국과 독일도 같은 시기 콩고 동부 의료 지원금을 줄였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국제개발처(USAID) 고위 관료를 지낸 아툴 가완데는 “2022년 에볼라가 발병했을 때 48시간 안에 확산을 막아 사망자가 1명 뿐이었다”며 “이번에는 바이러스가 이미 몇 달 이상 돌았을 가능성이 크고, 대응에도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WP에 전했다. WHO는 17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17일 선언 시점 콩코 정부는 확진 8건, 의심 246건, 의심 사망 80건이라는 집계를 내놨다. 그러나 4일이 지난 21일에는 의심 건수 600건, 사망자 139명으로 뛰었다. 닷새 만에 사망자가 60% 가까이 불었다.
현재 유행을 주도하는 분디부교형 에볼라는 승인된 백신과 치료제가 없다. 빨리 찾아 격리하는 것 외에 다른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선진국 원조가 마른 상황이라 안전한 격리 캠프를 세울 비용이 부족하다. 국제구조위원회(IRC)는 ”미국, 영국, 독일이 자금을 삭감하면서 발병 중심부 보건시설 가운데 약 60%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며 ”불안정한 치안과 예산 삭감이 폭풍 같은 결과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자선단체 머시코는 USAID 지원 중단으로 콩고 북·남키부주 수도관과 펌프 개선 사업이 멈췄고, 약 120만명이 안전한 식수를 위협 받고 있다고 밝혔다.
WHO에 따르면 미국은 2015~2024년 국제 결핵 원조의 약 50%를 책임졌으나, 글로벌펀드 2024~2026년 보조금 가운데 14억달러, 원래 배정액의 11%가 잘렸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미국의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지원이 영구 중단될 경우 2025~2029년 추가 신규 감염 660만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관련 사망 420만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보건 원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미국이 물러나자, 다른 국가들도 미국을 따라 후퇴했다. 영국은 원조 지출 비중을 국민총소득(GNI) 0.5%에서 2027년까지 0.3%로 낮추기로 했다. 줄어든 금액은 62억파운드(약 11조4700억원)다. 이웃 프랑스가 같은 시기 늘리기로 한 국방비(67억유로)와 비슷하다. 프랑스는 2026년 예산안에서 ODA를 7억유로(약 1조2200억원), 약 16% 줄이면서 국방비를 67억유로(약 11조7000억원) 늘렸다. 독일 역시 ODA를 2024년 115억유로(약 20조원)에서 2025년 103억유로(약 17조9000억원)로 10.4% 축소했다. 독일은 원조를 줄인 명분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기준을 충족하고, 우크라이나·중동 전선 대응을 위해 국방비를 늘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거론된 바이러스들이 곧장 제2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번진다고 보지 않는다. 에볼라는 체액 접촉으로만 전파되고, 안데스 한타바이러스는 사람 간 전파가 극히 제한적이다. 황열은 백신이 있다. 다만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걸러내던 첫 안전망이 끊어지면 전염병 발견이 늦어지고, 의료기관 내 감염과 국경 간 이동을 통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톰 프리든 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미국의 WHO 탈퇴와 CDC·USAID 인력 감축이 세계 보건 체제를 세차례 연속으로 강타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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