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리 또 어디 갔어”… 출렁이는 증시에 직장인 ‘자리 비움’
||2026.05.18
||2026.05.18
플랫폼 기업에 다니는 A씨는 최근 스마트폰에 사생활 보호 필름을 붙였다. 회사에서도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A씨는 “직장인 투자 ‘꿀팁’으로 추천받았다”며 “회사 PC로는 보안 문제 때문에 주식 창을 켤 수 없는데, 자리에서 편하게 시세를 확인하고, 매매 결정을 할 수 있어 유용하다”고 말했다.
아예 프라이버시 디스플레이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고른 직장인도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직장인은 최근 갤럭시S26로 휴대전화를 바꿨는데, 화면 보호 기능을 선택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최근 국내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근무 시간에도 MTS를 확인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주가 변동성이 커진 데다 단기 매매에 나서는 개인 투자자가 많아지면서, 업무 중에도 시세 확인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다. 반면 과도한 주식 거래가 업무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동료에게 부담을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식 알람 울리면 화장실로”… 직장인들 ‘단타 전쟁’
18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사업장에서는 국내 주식시장 정규장이 열리는 오전 9시 전후로 화장실이나 비상계단에서 MTS를 확인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고 한다. 회사 자리에서는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이거나 업무용 PC 접속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잠시 자리를 비운 뒤 시세를 확인하는 식이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도 평일 오전 9시부터 10~15분 정도는 MTS에 접속해 시장 흐름과 보유 종목 움직임을 확인한다. 이씨는 “근무 중 주가 변동 알람이 울리면 화장실이나 비상계단으로 이동해 시세를 본 뒤 매매 여부를 결정한다”며 “요즘 점심시간에도 직원들 사이에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주가가 단골 화제”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근무 중에도 주식 거래창을 쉽게 닫지 못하는 배경에는 국내 증시의 높은 변동성이 있다. 이날도 코스피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증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프로그램 매매를 5분간 일시 정지하는 제도다. 올해 들어서만 코스피시장에서 매수·매도 사이드카가 17차례 발동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단기 매매 성향이 강한 국내 투자 문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월 코스피시장의 하루 평균 회전율은 1.48%로, 미국 S&P500(0.22%)의 6.7배, 일본 닛케이(0.37%)의 4배 수준이었다. 코스닥시장의 회전율은 2.56%로 더 높았다.
회전율은 일정 기간 거래량을 상장 주식 수로 나눈 수치로, 높을수록 주식 손바뀜이 잦다는 의미다. 그만큼 국내 시장에서 짧은 기간 사고파는 단기 매매가 활발하다는 뜻이다.
◇“옆자리 직원이 시세만 봐”… 업무 차질 불만도
문제는 잦은 주식 거래가 업무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B씨는 후임이 수시로 MTS를 확인해 환자 응대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B씨는 “환자가 앞에 있어도 서서 MTS를 보고 있는 경우가 있다”며 “자제해 달라고 하니 ‘할 일은 다 하고 본다’고 해 원장에게 따로 보고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무원의 근무시간 주식 거래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올해 1월 수도권의 한 청사를 방문한 주민이 직원들이 개인용 태블릿 PC로 주식 거래 화면을 띄워놓고 있었다며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복된 근무 중 매매, 징계 사유 될 수도
전문가들은 근무시간 중 주식 거래가 실제 업무 차질로 이어질 경우 회사 차원의 제재가 가능하다고 본다. 업무시간 대부분을 시세 확인이나 매매에 쓰면서 업무 지연, 보고 누락, 고객 응대 차질 등이 발생했다면 근무 태만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 PC나 업무용 단말기로 주식 사이트와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반복적으로 이용한 경우도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
특히 금융·투자·회계 등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직무이거나, 회사 내부에 ‘근무시간 중 주식 등 투자 행위 금지’ 규정이 있다면 제재 가능성은 더 커진다. 다만 단순히 근무 시간에 한두 차례 주식 거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중징계가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해고 등 무거운 조치가 인정되려면 업무 차질의 정도와 반복성, 근로자의 지위와 담당 업무, 회사 규정 위반 여부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대법원 판례도 징계·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 근로자의 지위와 담당 업무, 근무 태도, 위반 행위의 반복성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일회성 거래보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시세 확인, 매매 행위가 업무에 지장을 줬는지가 핵심 판단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홍경열 법률사무소 율선 변호사는 “근무시간 중 주식 매매는 일회성 거래에 그치기보다 지속적으로 시황을 확인하고, 매매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업무 집중도 저하나 근무 태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한두 차례 주식 거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 것이 누적됐다면 정당한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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