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아직 불안하다면, 볼보 XC90 T8 PHEV 시승기
||2026.05.14
||2026.05.14
완전히 새로운 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긴장감이 있다. 처음 보는 버튼 배치, 낯선 무게 배분,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스티어링의 감각. 그런데 볼보 XC90 T8에 올라타는 순간, 그런 긴장은 없다. 이미 B5 마일드 하이브리드 모델(연식 변경 이후 현재는 B6 마일드 하이브리드로 명명되고 있다)을 시승했던 기억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차가 애초에 그런 긴장을 요구하지 않는 차라는 게 맞을 것 같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국내 출시된 2026년형 XC90은 B6 마일드 하이브리드 라인업과 T8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로 나뉜다. 가격은 B6 플러스 8,820만 원부터 T8 울트라 1억 1,620만 원까지 구성된다. 이번 시승 차량은 최상위 파워트레인인 T8 울트라 모델이다.
클래식하면서도 도회적인 볼보의 스타일
요즘 SUV 시장은 온통 쿠페형 실루엣이다. 루프라인을 낮추고, 뒷유리를 눕히고, 차체를 날카롭게 깎아낸다. 그 흐름 속에서 XC90의 외형은 오히려 도발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전고를 끝까지 유지하는 정통적인 박스 형태. 3열 구성의 SUV인 만큼 실용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디자인이 볼보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정확하다.
이번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면부 그릴이다. 세로 격자 패턴을 적용한 새 그릴은 볼보 전기차 라인업의 언어를 차용해 왔다. 얇아진 토르의 망치 헤드램프와 맞물려 기존 세대보다 선명하고 현대적인 인상을 준다. 21인치 휠이 기본 제공되며, 차체 비례상 적절한 볼륨감을 완성한다. 변화의 폭이 크지 않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그만큼 이전 모델의 완성도가 높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손이 기억하는 공간
실내에 앉으면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다. 볼보 특유의 따뜻한 소재 조화, 정제된 색감, 그리고 시각적인 자극을 최소화한 구성.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디스플레이 크기가 커졌지만, 전반적인 실내 분위기는 오히려 정숙한 방향을 유지한다.
크리스탈 소재의 기어 노브는 수년째 봐온 디자인인데도 여전히 예쁘다. 위아래로 조작하며 R·N·D 모드를 전환하는 손맛이 좋다. 딱딱하지도 헐렁하지도 않게 절도 있게 움직이면서, 그 과정에서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고급스럽다. 티맵 오토·누구 오토 기반의 국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익숙한 편의를 제공한다. 기존 볼보 오너들이 유독 이 부분에서 만족도가 높은 이유다.
시트는 동물성 소재를 쓰지 않는다. 볼보는 이미 오래전부터 친환경 시트 소재를 선택해왔는데, 내구성과 촉감 모두 기대 이상이다. 특히 몸의 윤곽을 따라 절개선을 배치한 설계 덕분에 착좌감이 밀착형으로 느껴진다. 2열 가운데에는 부스터 시트가 내장돼 있어, 아이들의 시트 포지션을 높여준다. 발 공간까지 고려한 설계다.
3열은 머리 공간에 여유가 있지만 발치가 좁다. 성인보다는 아이에게 맞는 공간이며, 폴딩하면 완전히 플랫한 적재 공간이 확보된다. 트렁크 하단에는 충전 케이블 수납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고, 바닥 플로어 칸막이를 세우면 쇼핑백이나 쓰러지면 곤란한 물건들을 고정할 수도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라는 선택지
T8 PHEV의 파워트레인은 2.0리터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과 후륜축 전기 모터의 조합이다. 시스템 합산 출력 455마력, 최대 토크 40.7kg·m. 18.8kW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해 순수 전기 모드(퓨어 모드)로 약 53km까지 주행 가능하다. 제로백은 5.3초다. 이 덩치에 이 무게를 끌고 5초 초반의 가속을 실현한다는 건 전기 모터의 즉각적인 토크 특성 덕분이다.
B6 마일드 하이브리드와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서스펜션이다. T8 울트라에는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 탑재된다. B5에 적용되는 어댑티브 댐퍼와 비교하면 확실히 더 부드럽다. 처음 이 차를 받았을 때는 '무르지 않나' 싶었다. 며칠 타다 보니 그 감각에 몸이 맞춰졌고, 이것이 불안정함이 아니라 진정한 편안함이라는 걸 알게 됐다. 거친 노면에서 잔진동을 걸러내는 능력,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의 앞뒤 움직임을 정리하는 모습, 에어 서스펜션이 아니면 내기 어려운 질감이다.
전기 모터가 뒤 차축에 배치된 구조상, 배터리 잔량이 충분한 상태에서는 전자식 AWD가 작동한다. 진흙이나 험로처럼 사륜구동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배터리가 부족하더라도, 엔진이 모터를 구동시켜 AWD를 유지한다. 배터리 걱정 없이 AWD가 작동한다는 의미다.
주행 모드도 다양하게 구성된다. 하이브리드·파워·퓨어·오프로드·AWD 모드 외에, 배터리 사용 방식도 직접 설정할 수 있다. '충전' 모드로 전환하면 엔진이 주행과 동시에 배터리를 충전하고, '유지' 모드는 현재 배터리 잔량을 고정한 채로 주행을 이어간다. 레버를 아래로 내리면 활성화되는 B모드는 회생 제동량을 늘려 배터리 회복 속도를 높여준다.
이 선택지들이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며칠 간 시승하면서 느낀 점이다. 고속도로 구간에서 배터리를 어느 정도 채워두고, 막히는 시내 진입 전에 퓨어 모드로 전환해 엔진 소음 없이 주행한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주행 방식을 스스로 설계하는 재미가 생긴다. PHEV를 매일 충전해서 쓸 필요는 없다. 주행 중 충전과 방전을 오가며, 한 달 내내 외부 충전 한 번 없이도 운용이 가능하다.
이중접합 유리 전면에 에어 서스펜션의 정숙성까지 더해지면, 크루징 상태에서 차내는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차체 강성과 차음재도 보강됐다고 하는데, 체감되는 수준이다.
고전적인 접근, 그래서 더 명쾌하다
요즘 신차들은 자극적이다. 화려한 디스플레이, 공격적인 서스펜션 세팅, 숨김없이 과시하는 성능. 그 흐름 속에서 XC90은 조용히 반대 방향을 걷는다. 전통적인 디자인 언어를 흐트러짐 없이 다듬고, 손이 닿는 모든 곳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최신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얹어 유연성까지 챙겼다.
처음에는 조금 무르다 싶었던 승차감이, 며칠 지나자 오히려 내게 맞는 감각으로 자리 잡았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편안함이 더 맞구나 싶었다. 순수 전기차로의 전환을 아직 망설이는 이들에게, 내연기관의 장점을 끝까지 활용하면서 전동화의 감각을 먼저 경험해보고 싶다면 볼보 XC90 T8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설득력 있는 선택지다.
글, 영상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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