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조수진의 K푸드 잉글리시
||2026.05.14
||2026.05.14
지난 5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백상예술대상 4관왕과 함께 1680만 관객을 돌파하며 거대한 신드롬이 되었다. 배우 유해진은 대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잊혀졌던 극장의 맛(the taste of cinema)을 다시 아는 것 같아 좋았다.”
흥미로운 건 그가 말한 “맛(taste)”이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의 맛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무뎌진 감각을 다시 깨우는 힘에 더 가까운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맛”은 영화 속 다슬기국 한 그릇과도 닮아 있었다. 영화에서 가장 먹먹한 장면은 폐위된 어린 단종이 다시 숟가락을 드는 순간이다.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그는 식음을 전폐한다. 엄흥도가 가져오는 밥상은 번번이 “물러가라!”는 호통과 함께 되돌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을 호랑이로부터 구하고 나서 단종 앞에 다슬기국 한 그릇이 놓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연다.
“배가 고프다.” “궁중에 있을 적에 먹어 보았다. 맛이 좋다.”
거대한 권력도, 왕의 체면도 열지 못했던 마음이 다슬기국 한 술 앞에서 다시 세상 쪽으로 마음을 돌린다. 왕을 다시 사람으로 만든 것은 화려한 수라상이 아니라 강가에서 건져 올린 작은 다슬기였다.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경상도에서는 고디라 불리는 다슬기는 영어로 ‘한국의 민물고둥(Korean freshwater snail)’, 혹은 한국어 그대로 다슬기(daseulgi)라고 표기한다. 최근에는 숙취 해소와 간 회복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지며 해외에서도 “천연 해독 음식(natural detox food)”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는 다슬기국의 진짜 의미는 건강식이 아니다. 그것은 “같이 먹는 음식”의 힘이다.
영화 속 가장 중요한 장면은 단종과 엄흥도가 한 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순간이다. 조선의 왕은 원래 독상(獨床)이 원칙이었다. 왕은 혼자 식사해야 했다. 그러나 폐위된 왕은 산골 마을의 호장과 같은 상 앞에 앉는다.
한국어에는 이를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겸상(兼床)이다. 영어로는 보통 to share a table이라고 번역하지만, 한국의 ‘겸상’은 단순히 같은 자리에 앉는다는 뜻을 넘어선다. 신분과 경계를 잠시 내려놓고 같은 음식을 함께 나누는 행위에 가깝다. 영어권 인류학에서는 이를 commensality라 부른다. 라틴어 com- (함께)과 mensa (식탁)에서 유래한 말로, 함께 먹는 행위를 통해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각해 보면 K-Food의 진짜 힘은 ‘겸상(兼床)’의 문화에 있다. 한 솥 찌개를 같이 떠먹고, 한 접시 반찬 사이로 여러 젓가락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외국인들이 한국 식당에서 종종 신기해하는 장면은 직원이 “어디에 놓아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자연스럽게 “가운데 놓아 주세요(Put it in the middle)”라고 답하는 장면이다. 음식이 ‘내 것’이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의 것이 되는 순간이다. 어쩌면 바로 그 “가운데”가 K-Food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음식보다 ‘함께하는 자리’를 먼저 생각하는 문화인 셈이다.
그래서 글로벌 미디어에서는 한국 식문화를 설명할 때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The Korean table levels everyone.(한국의 식탁은 모두를 평등하게 만든다.)” 결국 K-Food의 본질은 화려한 미식이 아니라 겸상의 문화인지도 모른다. 같이 끓이고, 같이 나누고, 같이 먹는 것. 그리고 그 식탁 한가운데에는 한국만의 ‘정(情, jeong)’이 있다. ‘정(jeong)’은 영어로 완벽히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다. affection, warmth, human bond 같은 표현들이 쓰이지만, 결국 오래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쌓이는 마음의 온기에 더 가깝다. 음식의 맛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먼저 줄여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를 본 1680만 관객 역시, 극장이라는 거대한 한 상 앞에서 잠시 ‘겸상’을 했는지도 모른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같은 장면에서 같은 허기를 느끼며 말이다.
“After all, food is the great equalizer.(결국 음식은 사람을 같은 자리로 데려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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