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은 CBDC 고수하는데… 카드사 스테이블코인 목매는 이유
||2026.05.14
||2026.05.14
국내 카드사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디지털 결제 중심은 CBDC와 예금토큰"이라고 못 박았던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이는 비은행 금융기관인 카드사가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사실상 스테이블코인뿐인 탓이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본업 수익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경쟁사로 꼽히는 간편결제사가 약진하자 새 먹거리를 선점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14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전업카드사 8곳(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우리·하나·BC카드)은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 출원에 나선 데 이어, 최근 솔라나·코인베이스·서클·파이어블록스 등 글로벌 가상자산 사업자들과 손잡고 결제 실증과 개념검증(PoC)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한카드는 솔라나·파이어블록스 등 글로벌 블록체인 기업과 손잡고 스테이블코인 기반 6개 핵심 기술을 시험했다. 개인 간 송금, 해외 결제,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잡고 카드를 발급하는 새로운 모델까지 검증을 마쳤다. KB국민카드는 솔라나, 안랩블록체인컴퍼니와 함께 고객이 스테이블코인을 보관하는 지갑을 만들고, 결제하고, 정산하는 전 과정의 기술을 점검하고 있다.
BC카드는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손잡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USDC)을 국내 매장에서 QR코드로 결제하는 방식의 실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외국인이 가진 스테이블코인을 국내 가맹점에서 곧바로 쓸 수 있게 하는 실증은 지난해 12월에 이미 마쳤다.
하나카드는 지난해 12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Circle)과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맺은 데 이어, 올해 3월부터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크립토닷컴과도 외국인 대상 국내 결제 마케팅에 들어갔다. USDC를 보유한 외국인이 크립토닷컴 비자카드로 국내 가맹점에서 결제하면 결제금액의 5%를 토큰으로 돌려주는 캐시백 방식이다.
우리카드는 자사 결제 앱에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끼워 넣는 방식을, 삼성카드는 계열사를 통해 관련 작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카드와 롯데카드 역시 지난해 30건 이상의 관련 상표권을 출원한 데 이어 내부적으로 스테이블코인 관련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사들이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구축에 매달리는 이유는 구조적 장점 때문이다. 기존 카드 결제는 결제와 정산 사이 1~3영업일의 시차가 발생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수초 안에 정산이 끝난다. 복잡한 결제 정산 단계도 줄면서 거래 수수료가 0.1% 미만으로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AI가 사람 대신 거래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 부상도 변수다. AI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결제하려면 정해진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거래가 자동으로 실행되는 이른바 '프로그래머블 머니'가 필요하다. 기존 카드 결제나 은행 이체는 사람이 일일이 승인 과정을 거치는 구조라 AI끼리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자율 거래를 처리하지 못한다.
카드업권 내 드리운 위기감도 인프라 구축 속도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최근 네이버는 가상자산 거래소 두나무를 네이버파이낸셜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카카오도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자사 앱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송금·결제가 가능한 '슈퍼월렛' 전략을 추진 중이다. 간편결제사·PG사 등 비금융사들도 같은 시장을 노리면서 제도화 시점이 늦어질수록 카드사가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영역에서 후발주자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안에서 흘러나온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팀장은 "빅테크 및 핀테크 기업이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독자적인 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할 경우, 기존 카드 결제망을 우회하게 돼 카드사 핵심 수익원인 가맹점 수수료와 결제 데이터 주권이 약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는 카드사에게 단순 외부 규제 문제가 아닌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결제 생태계 내 역할 재정립이라는 전략적 과제"라고 말했다.
다만 제도 환경은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잠재 리스크로 디페깅(통화와 불일치) 위험, 대규모 환매 요구에 따른 코인런, 자본·외환 규제 우회, 통화정책 효과 약화, 금융중개 기능 약화 등을 짚었다. 한은은 CBDC와 은행 예금에 기반한 예금토큰을 디지털화폐 인프라에 중심을 두고 있어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무게를 싣는 카드사들의 행보와는 거리가 있다.
아울러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할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도 발행 주체와 자본금 요건 등 주요 쟁점을 둘러싼 이견으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드업계를 대표하는 여신금융협회 차기 회장 인선에도 시선이 쏠린다. 정완규 회장은 지난해 10월 임기 만료 후에도 7개월 넘게 직무를 이어왔다. 협회는 이달 6일에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꾸리고 19일까지 후보 공모를 진행 중이다. 이르면 다음 달 총회를 거쳐 차기 회장이 선임될 전망이다. 하마평에는 서태종 전 한국금융연수원장, 김근익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이동철 전 KB금융지주 부회장, 임영진 전 신한카드 사장 등이 오르내린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그간 소매 결제 시장에서 쌓아온 가맹점망과 정산 노하우는 스테이블코인 도입 국면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부분이 적지 않다"며 "협회장 공백이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만큼, 새 회장 체제에서 디지털자산 입법 논의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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