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약가에 소아 필수약까지 생산 중단… 정부 저가 정책에 환자 ‘당혹’
||2026.05.13
||2026.05.13
소아 응급실에서 경련 환자에게 쓰이는 필수약마저 낮은 약가를 이유로 생산 중단 위기에 놓이면서, 정부의 저가 약가 정책이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약마저 채산성을 맞추지 못해 공급 중단 대상에 오르면서 저가 약가 정책이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관련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일동제약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로라제팜(Lorazepam) 성분 주사제인 ‘아티반’의 생산 중단을 보고했다. 아티반은 급성 경련, 뇌전증 지속상태, 급성 불안·흥분 상태 등에 쓰이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다. 특히 소아청소년 응급 진료 현장에서는 경련을 빠르게 멈추기 위해 오랜 기간 1차 치료제로 사용돼 온 의약품으로 꼽힌다.
아티반은 국가필수의약품이자 퇴장방지의약품으로 관리돼 왔다. 그만큼 의료 현장에서 필요성이 크지만, 수익성은 낮은 품목이다. 의료계와 국회 등에 따르면 아티반 2㎎ 기준 약가는 782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일동제약은 노후 설비와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생산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재고가 소진될 경우 올해 7월 전후로 소아 경련 치료 현장에서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료 현장에서는 아티반의 대체약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방식으로 손쉽게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소아 경련은 처치가 늦어질수록 뇌 손상 등 후유증 위험이 커질 수 있어 빠르고 익숙한 치료 프로토콜이 중요하다. 대체 약물을 사용할 경우 투여 방식이나 용량 조절, 호흡 억제 부작용 관리 등에서 추가적인 의료자원 투입이 필요할 수 있다. 단순히 같은 계열 약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환자 안전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아티반 사태는 특정 품목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국내 의약품 공급 중단·부족 사례의 상당수는 낮은 약가와 원료비 상승, 제조비 부담이 겹친 채산성 악화와 맞물려 있다. 대한약사회는 2025년 1월부터 11월까지 공급 중단 또는 부족이 보고된 275개 의약품 가운데 채산성 부족을 사유로 한 사례는 106개로 38.6%에 달했다고 밝혔다. 최근 6년간 공급이 중단된 국가필수의약품 중에서도 채산성 문제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분만 현장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이미 나타났다. 분만유도와 산후 출혈 관리에 쓰이는 옥시토신(Oxytocin) 주사제는 지난 2025년 말 품절 논란을 겪었다. 옥시토신 역시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된 기초 필수약이지만, 약가는 앰풀당 수백원 수준에 불과하다. 약가가 일부 인상됐음에도 원료비와 생산비를 감당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산부인과 현장에서는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사용량이 줄고, 사용량이 줄수록 기업의 생산 유인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기초 의약품의 조용한 퇴장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에는 뇌혈관질환 등에 쓰이는 니모디핀(Nimodipine) 제제, 협심증 등에 쓰이는 딜라제프(Dilazep) 제제, 알레르기 치료제 메퀴타진(Mequitazine) 일부 포장, 스테로이드제 덱사메타손(Dexamethasone) 제제 등이 공급 중단 또는 일부 중단 사례로 거론됐다. 기업들은 원료비 상승과 채산성 악화를 이유로 들었다. 당국과 기업은 대체약이 있거나 표준치료제가 존재해 환자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대체 가능'이라는 판단이 반복될수록 저가 기초약의 공급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저가약 공급 불안은 건강보험 약가 정책의 딜레마를 드러낸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제네릭과 오래된 의약품의 약가를 엄격하게 관리해 왔다. 환자 입장에서는 약값이 싸질수록 당장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원료비와 인건비, 제조·품질관리 기준 강화 비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약가가 장기간 낮게 묶이면 기업은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놓인다. 결국 판매량이 크지 않고 수익성이 낮은 필수약부터 생산 중단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소아·응급·분만 분야 의약품은 시장 논리만으로 안정적 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용량이 많지 않더라도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고, 대체약이 있더라도 의료진 숙련도와 투여 환경, 부작용 대응 체계에 따라 실제 대체 가능성은 달라진다. 아티반처럼 오래된 필수약은 신약처럼 주목받지 않지만, 응급실에서 경련을 멈추고 중증 환자의 상태 악화를 막는 기본 치료 인프라에 가깝다.
정부도 뒤늦게 제도 개선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통해 퇴장방지의약품 지정기준을 상향하고, 국가필수의약품 등에 대한 직권 지정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원료비 인상분을 약가에 더 빠르게 반영하고, 원가보전 기준도 현실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퇴장방지의약품 공급 비중이 높은 기업에는 별도 약가 우대 트랙을 마련하고, 원료 자급화 등 정책적으로 필요한 약제에는 약가 우대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부 대책이 실제 생산 유지로 이어지려면 보다 정교한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단순히 약가를 한 차례 올리는 수준으로는 원료 수급 불안, 제조설비 투자 부담, 소량 생산에 따른 고정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단독 생산 품목이나 소아·응급·분만 관련 의약품은 공급 중단이 보고된 뒤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전에 위험을 감지해 약가 조정과 공공 비축, 위탁생산, 긴급 수입 체계를 함께 가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당혹감이 클 수밖에 없다. 약값을 낮게 관리해 왔다는 정책이 오히려 ‘쓸 약이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약가 절감은 건강보험 재정 관리의 중요한 수단이지만, 필수약 공급망이 무너지면 그 부담은 결국 환자와 의료 현장으로 돌아간다”며 “환자 접근성은 약값이 싼 것만으로 보장되지 않으며, 실제 필요한 순간에 약이 병원과 약국에 있어야 비로소 접근성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오래된 필수약은 가격이 낮고 시장 규모도 작아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 유인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저가 약가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소아·응급·분만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의약품은 별도의 공급 안정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아티반과 같은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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