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도 자궁경부암 백신 지원… 그런데 ‘9가’ 아닌 ‘4가’?
||2026.05.10
||2026.05.10
정부가 이달부터 12세 남성 청소년을 HPV(사람유두종바이러스) 국가예방접종 지원 대상에 새로 포함하면서 남자 아이들도 이른바 ‘자궁경부암 백신’을 무료로 맞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여성을 넘어 남성까지 HPV 백신을 지원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지만, 일각에서는 최신 9가 백신이 아닌 4가 백신을 지원하느냐는 논란도 함께 커지고 있다.
10일 의료계 소식을 종합하면 질병관리청은 6일부터 2014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 사이 태어난 12세 남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HPV 백신 국가예방접종을 시행한다. 접종은 0개월과 6개월 간격으로 모두 2회 이뤄지며, 전국 보건소와 위탁의료기관에서 받을 수 있다. 질병관리청 예방접종도우미는 이번 사업의 지원 백신을 HPV 4가 백신으로 안내하고 있으며, HPV 9가 백신은 국가예방접종 지원 백신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HPV 백신은 흔히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남녀 모두에게 감염될 수 있는 HPV를 예방하는 백신이다. HPV는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일부 두경부암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국내 국가예방접종은 여성 청소년과 일부 저소득층 여성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남성 역시 감염원이 될 수 있고 HPV 관련 질환을 직접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아 접종 확대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확대는 그 요구가 처음 제도권에 반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문제는 정부가 선택한 백신이다. 현재 민간 의료기관에서 많이 알려진 백신은 9가 백신이다. 9가 백신은 HPV 6·11·16·18형에 더해 31·33·45·52·58형까지 모두 9개 유형을 예방 대상으로 삼는다. 반면 국가가 이번에 지원하는 4가 백신은 HPV 6·11·16·18형을 겨냥한다. 예방 범위만 놓고 보면 9가가 4가보다 넓다.
그럼에도 정부가 4가를 택한 가장 큰 배경은 비용이다. 국가예방접종은 개인이 병원에서 원하는 백신을 선택해 맞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 예산으로 정해진 대상자에게 접종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남아 접종을 새로 도입하는 순간 대상자는 크게 늘어난다.
여기에 9가 백신까지 적용하면 전체 재정 부담은 더 커진다. 4가 백신의 1회 접종 단가가 약 6만~7만원, 9가 백신은 11만~13만원 수준으로 차이가 크다. 연간 접종 대상자가 약 25만명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백신 종류 선택만으로도 예산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남아 접종 확대’와 ‘9가 백신 전환’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기보다, 우선 기존 국가예방접종 체계를 남아로 넓히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HPV 국가예방접종은 이미 4가 백신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여기에 남아만 새로 추가하면 사업 구조를 비교적 빠르게 확장할 수 있지만, 9가로 전환할 경우 백신 조달, 예산 편성, 비용효과성 평가 등 추가 논의가 불가피하다.
의료계는 4가 백신도 HPV 예방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선 4가 백신을 단순히 ‘재고 백신’이나 ‘뒤처진 백신’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4가 백신이 포함하는 16형과 18형은 자궁경부암 등 HPV 관련 암에서 중요한 고위험 유형으로 꼽힌다. 6형과 11형은 생식기 사마귀와 관련이 깊다.
더불어 국내외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며 효과와 안전성 자료가 축적돼 왔다. 질병관리청도 HPV 예방접종이 성경험 전에 이뤄질수록 백신에 포함된 유형에 대한 예방 효과가 크다고 안내하고 있다. 즉 4가 백신이 ‘효과가 없는 백신’은 아니다. 다만 9가 백신보다 예방 범위가 좁다는 점에서 보호자들이 체감하는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다.
논란이 커지는 이유는 국내에서 이미 9가 백신이 사실상 표준 선택지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비로 HPV 백신을 맞는 성인이나 청소년 보호자 상당수는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도 9가 백신을 선택한다. 특히 9가 백신에 포함된 52형과 58형은 아시아권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유형이다.
다만 국가예방접종의 관점은 개인 선택과 다르다. 개인 접종에서는 예방 범위가 넓은 백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국가 사업에서는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나 많은 대상자에게 기본적인 예방 기회를 제공할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남아 접종을 9가로 시작할 경우 예산 부담 때문에 대상 연령을 넓히기 어렵거나 사업 시행 자체가 늦어질 수 있다는 현실론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남아 접종 확대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HPV 예방을 여성에게만 맡기는 구조에서 벗어나 남녀 모두가 감염 고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다. HPV 백신은 여성의 자궁경부암 예방뿐 아니라 남성의 HPV 관련 질환 부담을 낮추는 데도 의미가 있다. 특히 접종 효과가 큰 청소년 시기에 국가가 비용을 지원하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예방 기회가 달라지는 문제도 일부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9가 백신 지원 여부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도 나온다. 국가예방접종이 처음에는 4가로 출발하더라도, 향후 백신 가격 변화와 예산 여건, 국내 HPV 유형 분포, 남아 접종률 등을 종합해 9가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보호자 입장에서는 무료 접종을 받을지, 추가 비용을 내고 9가를 선택할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가가 4가를 지원하는 상황에서 9가를 원하는 경우에는 접종기관에 백신 보유 여부와 비용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남아 접종 지원은 HPV 예방을 여성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겠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라며 “다만 예방 범위가 더 넓은 9가 백신에 대한 수요가 이미 커진 만큼, 정부도 비용 문제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질병 예방 효과와 국민 눈높이를 함께 고려해 지원 백신 전환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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