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의 함정…전임 한은 총재의 유산과 새 총재가 넘어야 할 산
||2026.04.29
||2026.04.29
이창용 전 총재의 동결 기조, 한·미 금리차 확대·원화 약세·가계부채 증가 초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의 초고강도 긴축, 물가 잡은 성공사례로 평가
신임 한은 총재의 동결 회피 아닌 물가 안정 원칙, 소신 있는 결단 필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단순한 금리 결정이 아니다. 한 나라의 물가, 부채, 자산시장, 환율을 동시에 조율하는, 경제의 ‘심장 박동’을 관리하는 일이다.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 임기 동안의 키워드가 표면적으로는 ‘신중한 동결’로 요약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가계부채 급증, 부동산 가격 재상승, 원·달러 환율의 상시 고평가라는 부담을 차기 총재에게 떠넘긴 시기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새 총재가 같은 길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해당 시기의 통화정책이 어디에서 왜 실패했는지를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창용 총재 재임시 글로벌 환경의 핵심 키워드는 미국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수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했고, 해당 과정에서 한·미 금리차는 과거에 보기 힘든 수준까지 확대됐다.
정상적인 교과서적 시각에서 보자면 이는 원화 자산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원화 약세·자본 유출 압력을 키우는 구조적인 요인이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은 상당 기간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고집했다. 물론 금리차만 보고 움직일 수는 없고, 성장과 부채, 물가를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은 타당하다.
문제는 금리차 확대가 환율과 금융시장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듯한 태도와 메시지였다.
‘금리차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식의 발언은, 시장에 한은이 환율과 자본 흐름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의지가 약하다는 신호로 읽히기 쉬웠다.
이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안팎이 일상화되는 수준까지 상승했고, 이 수준이 단지 단기적인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고평가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금리를 섣불리 인상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도, 인하도, 조정도 하지 않은 채 동결만 반복하는 선택이 과연 최선이었는지에 관해, 지금 시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저금리의 후유증은 가계부채 급증으로 요약된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충분히 긴축적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채, 일정 구간에서 동결을 거듭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은 다시 오르고, 가계부채는 역사적 고점 수준에서 한 번 더 증폭됐다.
총재 본인도 여러 차례 ‘현재 가계부채는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는 수준’이라고 인정했고, ‘수도권 집값 과열’에 대한 우려를 언급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나쁜 균형’에 갇혔다는 점이다. 성장률은 둔화되는데, 가계부채와 집값은 내려오지 않는다.
소득이 늘기보다 자산 가격과 부채가 먼저 뛰어버린 상태에서, 이후 경기 하강기에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여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금리를 올리자니 늘어난 가계부채에 대한 이자가 문제이고, 내리자니 다시 집값과 환율이 걱정되는 ‘딜레마의 구조’가 이때 만들어졌다.
이 구조의 책임을 전적으로 한은에 돌릴 수는 없지만, 통화정책이 적어도 ‘방치’의 인상을 주지 않을 만큼 명확한 시그널과 조정을 보내야 했다는 점에서, 전임 총재의 선택은 분명한 한계를 드러낸다.
통화정책을 평가할 때 자주 소환되는 인물이 미국 연준의 폴 볼커이다.
1970년대 후반, 미국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이 겹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있었다.
볼커는 의장 취임 이후, 막대한 정치적·사회적 부담을 감수하며 기준금리를 20%대 초반까지 끌어올리는 초고강도 긴축을 단행했다.
단기간에 실업률이 치솟고, 경기 침체가 가속되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 1달러로 살 수 있는 만큼을 내일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통화정책의 본질이라는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결국 볼커의 선택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꺾고, 미국 경제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그는 ‘인플레 파이터’로 기억된다.
정치나 여론의 압박에 밀려 ‘반쯤만 긴축하는 길’을 택했다면, 미국은 더 오랜 기간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에 시달렸을지 모른다.
신임 한은 총재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코 중립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미국 금리 인상기에 한·미 금리차 확대를 용인한 결과, 원화는 약세에 고착됐고, 낮은 기준금리 유지 속에 가계부채와 집값은 질 나쁘게 고착됐다.
경기 하강이 시작된 뒤에는 이 모든 부담 때문에 금리를 충분히 내릴 여력을 잃었다. 인상도, 인하도, 동결도 모두 부담스러운 상태는 결국 과거의 선택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 바통을 이어받는 새 한국은행 총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물가 안정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목표, 환율·부채·부동산을 입체적으로 보는 시야, 정치·여론의 단기 압박을 감수하는 소신 있는 결단, 그리고 국민과 시장을 상대로 한 솔직하고 일관된 설명이다.

글/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jyseo@smu.ac.kr/rmjiseo@hanmail.net)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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