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美 그늘 벗어나자’… 캐나다, 건국 160년 만에 ‘영끌·빚투’ 국부펀드 첫선
||2026.04.28
||2026.04.28
캐나다가 1867년 건국 이후 160년 만에 처음으로 연방 차원 국부펀드를 선보였다.
노르웨이나 카타르 처럼 자원수익을 해외 금융자산에 쌓아 미래세대 몫으로 남기는 전형적인 국부펀드 모델은 아니다. 정부가 빚을 내 마련한 종잣돈으로 민간·해외 자본을 끌어들인 뒤 자국 에너지와 핵심 광물, 인프라에 지분 투자를 하는 산업전략 펀드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거세진 미국발 관세 폭탄과 보호무역 장벽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27일(현지시각) 수도 오타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캐나다 스트롱 펀드’ 출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캐나다 역사상 첫 연방 국부펀드다. 카니 총리는 “미국은 변했다. 그것은 그들의 권리다. 우리는 대응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촉발된 북미 경제 질서 재편을 정면으로 겨눈 발언이다.
펀드 초기 재원은 향후 3년간 250억 캐나다달러(약 27조원) 규모로 마련했다. 캐나다 정부는 단독으로 사업을 떠안는 방식 대신 민간·해외 투자자를 모아 함께 지분을 투자할 계획이다. 일반 국민도 별도 소매 투자상품을 통해 펀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투자 대상은 항만과 철도, 전력망, 통신망 같은 인프라부터 청정·전통 에너지, 핵심 광업, 첨단 제조, 농업까지 캐나다 경제 안보와 직결된 산업 전반을 아우른다. 캐나다 재무부는 펀드가 성공하면 투자자가 상승분을 공유하고, 초기 투자원금은 보호 받는 구조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스트롱 펀드는 운영 방식 면에서 기존 대형 국부펀드 개념과 차이가 있다. 노르웨이 GPFG, 아랍에미리트(UAE) ADIA, 사우디아라비아 PIF처럼 유명한 국부펀드들은 모두 자원 잉여수익을 해외에 분산투자해 미래세대 부를 쌓는 저축형 펀드다. 토론토대 조지프 스타인버그 경제학과 교수는 BBC에 “역사적으로 국부펀드는 공공 소유 자산, 특히 석유 수익을 해외 다변화 포트폴리오에 넣는 투자 수단이었다”고 했다.
캐나다는 정반대로 남는 돈이 아니라, 빌린 돈을 해외가 아닌 국내 프로젝트에 쏟아붓는다. 캐나다 소셜캐피탈파트너스 존 셸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노르웨이나 앨버타 펀드는 자원 부를 보호·증식하기 위해 설계됐지만, 캐나다 스트롱 펀드는 주권적 산업전략을 뒷받침하는 자본”이라며 “같은 이름을 쓰지만 전혀 다른 목표를 가졌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재원 조달 구조다. 캐나다는 노르웨이·싱가포르·사우디처럼 재정흑자를 쌓아둔 나라가 아니다. 캐나다 재정적자는 2024년 420억 캐나다달러에서 2025년 780억 캐나다달러로 1년 만에 86% 급증했다. 경상수지 적자도 2025년 304억 캐나다달러로 전년(150억 캐나다달러) 대비 두 배가 뛰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캐나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약 2조5100억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펀드 초기 규모는 GDP 대비 0.7%에 불과하다. 스코샤은행 데렉 홀트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통상 국부펀드 보유국은 순저축국이지만, 캐나다는 그렇지 않다”며 “캐나다가 순저축 경제로 바뀌지 않는다면, 새 펀드는 자본 총량을 늘리기보다 다른 기관·자산에서 저축을 빼오는 형태에 그칠 수 있다”고 봤다.
캐나다는 자원 부국이지만 헌법상 비재생 천연자원 권한이 주정부에 강하게 귀속된다. 연방정부가 노르웨이처럼 석유 수익을 중앙에 모아 펀드로 적립하기 어려운 구조다. 제1야당 보수당 피에르 폴리에브 대표는 “이것은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가 아니라 국채펀드(sovereign debt fund)”라며 “노르웨이·싱가포르·사우디는 대규모 흑자를 쌓아 펀드에 투자하지만 카니 총리에게는 흑자가 없다”고 깎아내렸다. 블룸버그도 “원금을 보호해주는 투자 구조는 국부펀드로서는 이례적”이라며 “정부가 명시적 보증을 제공하면 펀드 손실은 결국 재정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짚었다.
그동안 캐나다는 국부펀드 대신 연금과 가입자 기여금을 기반으로 한 공적연기금을 키웠다. 캐나다 연금계획(CPP)은 2025년 12월 말 순자산 7807억 캐나다달러로 전 세계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대형 연기금이다. 여기에 퀘벡주 연금기금(CDPQ)과 온타리오 교사연금, 온타리오 공무원연금(OMERS)까지 합치면 1조7000억캐나다달러(약 1836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SWF 집계 기준 나머지까지 전부 합친 총 캐나다 공적연기금 자산은 2조120억달러로, 이번에 선보인 국부펀드 자산(180억달러) 100배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캐나다 스트롱 펀드 성패가 성공하려면 기존에 쌓아놓은 이 거대 연기금 자본을 끌어 들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연기금 자금은 정부 쌈짓돈이 아니라 가입자 노후자산이다. 캐나다 연금계획 운용기관인 CPPIB는 한국 국민연금처럼 법적으로 ‘과도한 손실위험 없이 최대 수익률을 추구해야 한다’는 운영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가 애국심으로 호소해도 이 거버넌스(펀드 운영) 원칙을 바꾸기는 어렵다.
캐나다에 앞서 호주가 만든 국부펀드인 퓨처펀드는 독립운용과 명확한 수익률 기준 덕에 설립 이후 연 8.0% 수익을 냈다. 뉴질랜드 국부펀드 슈퍼펀드는 정부 단기차입비용보다 연 6.43%포인트 초과수익을 올렸다. 호주와 뉴질랜드 모두 재정흑자국이 아니어도, 확실한 거버넌스 원칙을 바탕으로 펀드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CPPIB 미셸 르덕 대외담당 최고책임자는 캐나다 매체 글로브앤드메일에 “공공투자기관이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려면 명확한 상업적 권한과 강력한 거버넌스, 운영 독립성이 확보되야 한다”며 정치적 외풍을 연기금에 가장 큰 위험으로 지목했다.
카니 정부는 다음 주 봄 경제·재정 보고서에서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식과 거버넌스 구조를 공개할 예정이다. 캐나다 정책연구단체 빌드캐나다의 루시 하그리브스 최고경영자(CEO)는 “캐나다 스트롱 펀드는 이름만 국부펀드”라며 “정부가 이미 추진 중인 프로젝트에 캐나다인이 지분을 사도록 한다는 점에서 국부펀드보다 전쟁채권에 더 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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