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ESG ‘지배구조’에 무게추…韓 기업 대응 시급
||2026.04.28
||2026.04.28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무게추가 지배구조(G)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에서 환경(E)·사회(S) 관련 주주제안이 급감한 반면, 지배구조 안건은 202건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국내도 세차례 상법 개정과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주요 그룹의 지배구조 대응이 시급해졌다는 분석이다.
SK증권에 따르면 미국 러셀3000 상장기업의 2026년 분야별 주주제안 건수는 지배구조 202건, 환경 63건, 사회 24건, 반(反)ESG 44건 순으로 집계됐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환경·사회 관련 안건은 줄었지만 지배구조 안건은 늘어났다. ESG 경영 무게중심이 G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행동주의 펀드와 기관투자자의 공략 지점도 환경·사회에서 이사회 구성, 배당 정책, 자본 배분 등 지배구조 영역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국내 압박 강도는 더 강하다. 1차(2025년 7월)·2차(2025년 9월)·3차(2026년 3월) 상법 개정으로 이사 충실의무 확대, 감사위원 3%룰 강화, 집중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법제화되면서 수십 년간 구호에 머물렀던 지배구조 개혁이 구속력 있는 규범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한화투자증권은 분석했다. 특히 이사 충실의무가 '회사'에서 '회사와 모든 주주'로 확대되면서 물적분할, 자사주 활용, 내부거래 등 승계 관련 거래가 주주대표소송의 표적이 될 수 있게 됐다.
3차 개정으로 도입된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경우 즉각적 영향을 미친다. 새로 취득한 자사주는 1년 이내, 기존 보유분은 시행일 이후 6개월 유예 후 1년 이내(총 18개월) 소각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한화투자증권은 국내 상장사가 보유한 약 28조원 규모의 자사주가 강제 소각 대상에 포함된다고 진단했다. 자사주 10% 보유 기업은 소각 시 주당순이익(EPS)이 약 11% 증가하는 효과가 따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급 측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위탁운용사가 자사 명의로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기관투자자의 G 안건 관여 강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2025년 말 기준 263조7000억원 규모 국내 주식의 의결권 행사 구조를 개편한다. 1차 이관 대상은 8개 운용사가 운용 중인 약 12조9000억원 규모 책임투자형 펀드로 전체 위탁 규모의 약 10% 수준이다. 만약 의결권 행사 결과가 자금 배정·회수와 연동될 경우 운용사 간 수탁자 책임 경쟁이 강화되고, 이사회 진입과 임원 보수 등 지배구조 안건에 대한 관여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한화투자증권은 분석했다.
◆선제 소각이냐, 예외 조항이냐…기업별 엇갈린 대응
이 같은 압박에 대한 한국 기업의 대응은 두 갈래로 갈렸다. 시장 신뢰 회복에 무게를 둔 기업과, 정관·이사회 구조 조정으로 제도 효과를 완화하려는 기업이 뚜렷이 구분됐다.
전자의 대표 사례는 KT&G다. KT&G는 이번 정기주총에서 보유 자기주식 전량 소각을 발표하는 동시에, 신기술 도입과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이 있을 때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정관 조항을 신설했다. 한화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의무 소각을 선제 이행해 시장 신뢰를 확보하면서 자본정책 유연성을 함께 확보한 절충 사례로 봤다. 삼성전자, SK㈜ 등 일부 대형사도 법 시행을 앞두고 수조원대 선제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코스피 27개사·코스닥 38개사는 경영상 목적 예외 조항을 정관에 신설·확대했다. 고영, 네오위즈, 메디톡스, 서울반도체, 셀트리온제약, 솔브레인, 씨젠, 레인보우로보틱스, 파크시스템스, 한글과컴퓨터, 위메이드 등 성장주·정보기술(IT)·이차전지·바이오 업종이 다수다. 자사주를 인수합병(M&A) 대가, 임직원 보상, 재무구조 개선 재원 등으로 활용할 법적 경로를 미리 확보했다.
이사회 구조도 손질하는 방식으로도 진행됐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21곳·코스닥 2곳이 이사 임기를 3년 이내로 제한하는 정관을 도입했다. GS, 녹십자, 영원무역, 오뚜기, 하이트진로, 효성중공업·효성티앤씨 등이 해당한다.
이사 수 상한을 신설·축소한 곳은 코스피 25곳·코스닥 7곳에 달한다. 카카오·카카오페이, 셀트리온, 롯데케미칼, 하이브, 한국타이어,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 등이 포함됐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효과를 점진적으로 희석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효성중공업·효성티앤씨는 그룹사 3년 이상 근무 또는 재임 이사 3분의 1 추천을 이사 후보 필수 요건으로 정관에 명시해 외부 인사 진입을 제한했다.
다만 이런 방어가 단기 안정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이사회 축소와 자격 요건 강화가 단기적으로 경영권 안정 신호로 읽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배구조 리스크 프리미엄을 높이고 ESG 디스카운트를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카카오, 하이브, 에코프로처럼 행동주의나 규제 이슈를 겪은 기업에서 비슷한 정관 변경이 반복될 경우 국민연금이나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이로 인해 정관 재개정 요구나 이사 선임 표 대결 등 후속 이벤트가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가 ESG로 실질적 항목으로 주목 받으면서 국내 주요 그룹의 선제적 대응 여부는 향후 밸류에이션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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