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슈퍼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까 [이지수 소장의 슈퍼컴퓨터 이야기]
||2026.04.26
||2026.04.26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각 국가는 기술 주권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표적 전략 기술인 AI에 관해서는 국가의 미래를 걸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대만은 세계 AI 서버 시장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있다. 또 이들을 연결하는 고성능 네트워크 기술, 고성능 AI 서버에 필수인 냉각 기술에 관해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슈퍼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까?
대만은 슈퍼컴퓨터에 관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1991년에 설립된 국가 슈퍼컴퓨터 센터 NCHC(National Center for High- Performance Computing)가 있다. NCHC 초기에는 벡터, SMP(Symmetric Multi-Processing), 클러스터 컴퓨터 등 다양한 아키텍처를 시도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클러스터 컴퓨터를 중심으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NCHC가 구축한 슈퍼컴퓨터 공급자를 살펴보면 HPE, IBM, 후지쯔 등 글로벌 슈퍼컴퓨터 기업 외에도 에이서, 콴타 컴퓨터, 에이서스 등 대만 기업이 포함돼 있다. NCHC가 자체 개발한 시스템도 있다.
공개경쟁을 통해 공급자가 선정됐으며 슈퍼컴 시스템 성능이 가장 중요한 평가지표인 것을 고려하면 대만 기업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경쟁력의 근원은 세계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대만 서버 산업이다. 1980년대 PC 및 노트북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대만은 고객사의 설계에 따라 조립해 납품하는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형태의 사업에서 시작해 독자적으로 설계에서 생산까지 책임지는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형태로 사업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1년 대만의 세계 노트북 시장 점유율은 90%에 육박했다.
2000년대 초 PC 산업이 성숙기에 도달하며 이익이 감소하자 대만 기업은 서버 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서버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클라우드 기업의 개별적인 요구에 따른 ‘ODM-Direct’ 형태의 맞춤형 서버에 집중하여 이익률을 개선했다. 매출 기준 대만의 세계 AI 서버 시장의 점유율은 현재 80%에 달한다.
대만 기업들이 슈퍼컴을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은 NCHC 사례로 증명됐다. 그렇다면 이를 바탕으로 OBM(Original Brand Manufacturer)으로서 세계 시스템 시장에서 HPE, Dell 등의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을까?
Wiwynn, 콴타 클라우드 테크놀로지, 기가 컴퓨팅 등 기업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세계 시스템 시장에서 그들의 점유율은 미미하다.
그 첫 번째 어려움은 기존 사업과의 충돌이다. HPE, 델 등 시스템 기업은 대만 기업의 주요 고객이다. 독자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이들과 정면으로 경쟁하게 되어 기존 OEM 및 ODM 형태의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세계시장에서 판매 및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대규모의 투자이다. 대만에서 몇 개의 레퍼런스 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것과 이를 글로벌로 확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일본의 경우 오래전부터 경쟁력 있는 슈퍼컴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그 점유율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도전은 많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대만 정부가 주도하여 산학연 주요 기관들이 참여하는 ‘타이완 컴퓨팅 얼라이언스’를 2025년 발족시켰다. 이들의 협력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컴퓨팅 기술의 수출을 증진하고자 한다. 한국이 소버린 AI를 고민하면서 이러한 노력들이 어떠한 결실을 맺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지수 소장은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했고 독일 국립슈퍼컴센터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센터 센터장, 사단법인 한국계산과학공학회 부회장, 저널오브컴퓨테이셔널싸이언스(Journal of Computational Science) 편집위원, 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소장을 거쳐 사우디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교(KAUST) 슈퍼컴센터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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