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형 대출’ 해결책으로 땜질 처방, 언제까지 [줌인IT]
||2026.04.24
||2026.04.24
대학가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윤 사장은 최근 운영자금이 막히자 거래은행을 찾았다. 매출은 그대로인데 임대료와 인건비 상승에 이자 막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신용등급과 소득흐름을 이유로 대출을 거절했다. 저축은행도 가봤지만 총량 규제 여파로 한도가 크게 줄었다는 설명만 들었다. 결국 카드론과 보험계약대출로 급한 불을 껐다. 정상적인 사업자금이 ‘급전’으로 대체되는 전형적인 경로다.
최근 금융당국이 중저신용자 대출 문을 일부 다시 열어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어딘가 익숙하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할 때마다 반복돼온 익숙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먼저 규제를 조이고, 그 결과 취약 차주가 밀려난다. 부작용이 커지면 다시 숨통을 틔워준다. 정책이라기보다 사후 봉합에 가깝다.
정책 시행전부터 이러한 문제점이 예고돼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2금융권을 강하게 옥죄는 방식의 가계대출 규제가 도입될 때부터 서민금융 기능 약화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카드론, 자동차담보대출, 예금담보대출처럼 급전이 필요할 때 찾는 이른바 ‘불황형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카드사의 3월 말 카드론 잔액은 42조9941억원으로 전월보다 약 920억원 증가하며 3개월 연속 늘었다.
은행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5대 시중은행의 예금·청약 담보대출 잔액은 3월 말 6조2749억원으로 1년 전보다 7.5%(4404억원) 증가했다. 보험계약을 담보로 한 대출도 10개 보험사 기준 55조4597억원으로 같은 기간 0.35%(1951억원) 늘었다. 생활비와 운영비를 버티기 위한 ‘마지막 수단’들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신호다.
규제 강도가 더해지면서 저축은행·캐피탈 등 2금융권의 가계대출 문턱도 급격히 높아졌다. 여기에 예금담보대출, 보험약관대출까지 ‘빚투’ 통로로 지목되면서 취약 차주가 설 자리는 계속 줄고 있다. 이에 당국이 만지작 거리는 카드는 중금리대출 확대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 처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시장에서 밀려난 차주를 다시 끌어오는 ‘사후 조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취약차주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이는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후 채무조정이나 탕감 정책이 뒤따른다. 건전한 신용질서를 훼손하는 고리를 정책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을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애꿎은 세금이 쓰인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늘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예측 가능한 부작용조차 반복적으로 방치하면서 정책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
대출 규제에 있어 필요한 것은 ‘강도’가 아니라 ‘정교함’이다. 정책은 타이밍과 경로, 그리고 파급 효과까지 함께 설계돼야 한다. 규제를 조였다 한쪽만 풀었다는 식의 땜질 처방으로는 시장도, 실수요자도 지킬 수 없다.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신용정책, 그리고 그에 걸맞은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금융당국에 요구되는 책무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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