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가 되니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 하나
||2026.04.24
||2026.04.24
환상적인 봄꽃 군락지 몰랐던 점 후회
육체·정신 건강 위해 철쭉 군락지서 힐링

나이가 60세를 지나면서 여러 가지 후회되는 점이 많다. 그 중에는 다소 엉뚱하지만 이런 것도 있다.
바로 젊은 시절에는 우리나라 산에 있는 환상적인 봄 꽃 군락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야 발견했다는 점이다. 청년 때는 등산에 관심이 없었고 봄꽃은 더더욱 안중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만약 당시에 이런 봄꽃 군락지가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만사 제쳐 두고 매년 방문했을 것이다. 청춘시절이 한결 윤택했으리라. 그런데 어느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고 그런 정보를 접할 기회도 없었다.
흔히 자연 풍광이라면 스위스의 그린델발트나 캐나다의 레이크루이스 같은 글로벌 명소만 가야되는 줄 알지만 국내에도 매년 열흘씩 세계적 수준의 절경을 뽐내는 장소들이 있다. 이원수 선생님이 작사한 '나의 살던 고향은' 동요의 배경은 매년 4월 초가 되면 정상 일대가 핑크빛 진달래 천국을 이루는 창원 천주산이다. 그런 몽환적인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왜 이렇게 나이 들어서야 왔나"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충격이었다. 지금도 그런 장소가 있다는 걸 아는 한국인이 그리 많지 않다.
혹시 "세계가 중동전쟁으로 시끄럽고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한가하게 꽃 구경 타령을 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라. 대다수 한국인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에다 오염된 도시에서 분노와 좌절을 키우면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 등산과 봄꽃이라는 힐링 요소가 되지 않을까.
열흘 정도 무리지어 피었다가 온갖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선사하고 사라지는 봄꽃 군락지는 분명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다. 분홍빛 컬러를 보면 뇌에서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고 엔돌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며 심신이 이완된다. 우울감, 무기력함, 의기소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해준다. 당신의 사업이 부진하고 주식이 폭락하며 가정과 직장에서 짜증나는 일만 벌어질 때도 핑크빛 대자연은 은근한 친구가 되어준다.
이제 봄꽃 중에도 매화, 산수유, 벚꽃, 진달래의 계절은 지나갔고 가장 대중적인 철쭉(Royal Azalea)의 시간이 왔다. 4월25일 축제가 열리는 광양 백운산 국사봉이 스타트를 끊는다. 꽃이 먼저 나오는 진달래가 10대 소녀의 풋풋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면 꽃과 잎사귀가 동시에 나오는 철쭉은 중년 여성의 성숙미를 과시한다.
다만 요즘 서울 도심의 가로수나 아파트 단지에 피어 있는 영산홍, 자산홍, 백철쭉 같은 유사 철쭉은 아무리 보아도 별로다. 주로 일본에서 가로수 용도로 개발되었다. 철쭉(2~5m)보다 키가 작고(15~90㎝) 꽃은 많으며 잎은 적어 정원수로 인기가 높다. 개화 시기도 일반 철쭉보다 빠른 편이라 인기가 좋다.
하지만 붉은색이나 보라색 위주로 답답하고 둔탁하게 느껴지며 꽃에다 인위적으로 화장을 한 느낌이 든다. 삭막한 도심에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감탄이 나올 정도는 아니며 되려 폄하하는 전문가가 있을 정도다.
제대로 된 철쭉을 보려면 아무래도 전국 곳곳의 산에 있는 철쭉 군락지를 찾아가야 한다. 진달래와 마찬가지로 산 정상에 많기 때문에 등산을 하든 차량으로 올라가든 약간의 수고로움을 필요로 한다. 땅에서는 산 정상에 그런 별천지가 있는 줄 모른다.

필자가 꼽는 국내 넘버원 철쭉 군락지는 100만평에 이르는 전남 보성 일림산이다. 5월 초 득량만 바다를 배경으로 형형색색 산철쭉의 향연이 펼쳐진다. 일림산은 등산의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아 좋다. 사람 키가 넘는 핑크빛 철쭉 터널을 걸어가면 "천국 같다"가 아니라 "진짜 천국"이란 말이 나온다. 가수 정훈희의 명곡 '꽃밭에서'는 이런 곳에서만 불러야 할 것 같다.
경남 합천과 산청에 걸쳐 있는 황매산은 정상 부근 해발 1000m 지대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5월 초순 축구장 60개 규모의 광활한 고원 지대에 조성된 분홍빛 산철쭉의 바다를 거니는 것은 인생 최고의 황홀한 경험이다.
그런가 하면 지리산 바래봉에 올라가 팔랑치까지 비단을 두른 듯 산철쭉이 만발한 2~3km의 능선 구간을 터벅터벅 걷노라면 흡사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철쭉은 종류가 많은데, 그 중에도 으뜸은 '진달래'와 비교해 '연달래'라고도 불리는 연분홍 철쭉이다. 진정한 철쭉이라고도 한다. 품격과 우아함이 남다르고 귀부인 같은 느낌을 준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서리산과 연인산의 정상, 강원도 정선 두위봉 정상, 소백산 연화봉에서 제2연화봉을 거쳐 비로봉까지 이르는 능선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땅에서는 도저히 구경할 수 없는 품종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모든 봄꽃은 10일 이내의 개화 절정기를 갖고 있다. 일찍 가면 재미가 없고, 늦게 가면 시들어서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니 타이밍을 잘 맞추는 수고 정도는 요구한다. 이런 걸 모르면 "이번 달은 바쁘고 다음 달에나 한 번 가보지"라고 엉뚱하게 말하기 쉽다.
올해 여건이 힘들더라도 눈앞에 다가온 경이로운 봄꽃 군락지를 한 번은 직접 방문해 보시라. 당신의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을 모두 챙길 기회다. 정치와 경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하늘로 치솟는 한국인들에겐 잠깐이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위로가 될 것이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대자연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견하는 감성이 없는 사람은 친구로도 애인으로도 동료로도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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