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 공무원의 셀프 AX, 그리고 국가 AX의 지향점 [줌인IT]
||2026.04.22
||2026.04.22
최근 서울 광진구청에 근무하는 류승인 주무관이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을 활용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으로 문서 자동화 도구 ‘코닥(Kordoc)’과 법령 연동 서버 ‘한국법 MCP’를 자체 개발한 소식이 알려지며 공직 사회와 IT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경영학과를 나와 IT 비전공자인 일선 공무원이 현장의 비효율을 스스로 타개한, 훌륭한 상향식(Bottom-up) 인공지능 혁신(AX) 사례로 평가된다. 정부 역시 이를 모범 삼아 일선 공무원의 자체적인 AI 도구 개발을 적극 장려하고 나섰다.
코닥은 단순한 문서 파서(Parser)를 넘어선다. HWP, HWPX, PDF 문서를 자동으로 분석해 텍스트를 추출하는 것은 물론, 수십 개의 문서를 동시에 비교해 변경된 내용만 선별하고 새로운 문서를 생성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수백 건의 문서를 일일이 대조하고 엑셀로 옮기던 고질적인 수작업을 AI 기반 도구로 자동화한 것이다.
함께 개발된 ‘한국법 MCP(Korean Law Model Context Protocol)’는 법률·판례·행정규칙·자치법규 등 방대한 법령 체계를 AI가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연동 도구다. 약칭 자동 인식, 조문번호 변환, 별표 및 별지 서식 자동 추출 등 철저히 실무 중심의 기능을 갖췄다. 이 도구를 거치면 관련 법령부터 해석 사례까지 한 번에 조회할 수 있어 법령 검토와 정책 수립의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류 주무관이 개발한 두 도구의 기능은 그야말로 실무자의 고충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할 수 있다.
다만 이처럼 훌륭한 성과 이면에 자리한 공공 IT 인프라의 구조적 공백은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코닥과 한국법 MCP는 파편화된 공공 데이터와 문서 작업을 한국 행정 업무에 특화된 하나의 ‘자동화 파이프라인’으로 매끄럽게 연결해 낸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기존 공공행정 시스템(레거시)과 최신 AI 모델 간의 ‘데이터 연동’을 지원하는 체계적인 공식 플랫폼의 부재를 방증하기도 한다. 방대한 국가법령 데이터베이스와 그동안 쌓인 행정 문서들을 AI와 연계할 시스템적 지원이 늦었기 때문에 일선 실무자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부가 실무자의 자체 도구 개발을 장려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개발자 개인의 헌신으로 탄생한 이 도구는 오픈소스 도입이 가능한 일부 부서의 업무 효율은 높여줄 수 있지만, 이를 전체 부처로 확산하거나 국가 차원의 통합 데이터망과 매끄럽게 연동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더욱이 국가 행정의 핵심 업무 체계에 필요한 도구를 개인의 선의와 자발적 유지보수에 무한정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정부는 공공분야 AX의 최종 목표를 실무자의 바이브 코딩이나 기발한 프롬프트 입력에 의존하는 ‘창의적·비용효율적 AX 모범사례 확보·확산’ 수준에 둬서는 안 된다. 특히 이런 개별 사례들의 확산은 실무 아이디어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하지만, 자체적인 툴 사용이 정부 조직 전체로 무분별하게 확대될 경우 향후 국가 차원의 공식 플랫폼으로 통합할 때 연동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각종 AI 행정지원 서비스나 업무 플랫폼 고도화 사업들 역시, 단순히 기존 시스템 한편에 문서를 요약해 주는 ‘챗봇 창’ 하나를 띄워두는 수준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공무원들이 매번 챗봇에 파일을 올리고 프롬프트를 고민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내부망에서 수십 개의 행정 문서와 조문을 실무자가 원클릭으로 손쉽게 교차 대조·분석하고 기안서 초안까지 즉시 찍어내는 엔터프라이즈급 ‘지능형 행정 문서 처리 솔루션’을 핵심 업무 시스템에 완전히 내재화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해야 한다.
류 주무관은 코닥과 한국법 MCP를 배포한 깃허브(GitHub)에서 ‘딴짓하는 류주임’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그가 딴짓을 기꺼이 즐겼는지, 할 수밖에 없었는지 속마음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정한 국가 AX의 본질은 실무자가 본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딴짓을 해야 하는 척박한 IT·AI 인프라를 혁신하는 데 있다는 건 틀림없다. 앞으로는 류 주임과 같은 공무원들이 국가가 튼튼하게 깔아준 인프라 위에서 행정과 대민 서비스, 정책 기획 등과 같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종길 기자
jk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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