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반대표, ‘깃발’이 되려면 [줌인IT]
||2026.04.21
||2026.04.21
국민연금이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서 다시 한 번 ‘목소리’를 키웠다. 반대 의결권 행사가 눈에 띄게 늘며 이전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공시한 주주권 행사 내역을 보면 국민연금은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284개 기업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했고 이 가운데 382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특히 반대표가 집중된 안건은 ‘이사 보수한도 승인’으로 143건(37.5%)에 달했다. 성과 대비 과도한 보상이나 주주가치와의 괴리를 주요 반대 사유로 제시하며, 정관 변경과 이사 선임 등 기업 지배구조 전반에 걸쳐 견제 의지를 드러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이어져 온 변화가 일정 부분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숫자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반대표는 늘었지만 실제 안건이 부결된 사례는 손에 꼽힌다. 최근 몇 년간 국민연금의 반대가 주총 결과를 뒤집은 비율은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물렀고, 올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대는 했지만 바뀐 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구조적 한계도 분명하다. 국민연금의 상장사 지분율은 대부분 5~10% 수준에 그쳐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른 기관투자가나 소액주주와의 연대 없이 행사되는 의결권은 상징적 메시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견제’는 가능해도 ‘변화’까지 이끌어내기엔 어렵다.
그렇다고 이러한 변화 자체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국민연금이 더 이상 ‘조용한 주주’에 머물지 않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보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 취지에 어긋나는 정관 변경 안건에 대해 사전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의미있는 진전”이라며 “모든 안건을 뒤집기는 어렵더라도 다른 자문사나 투자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 단계는 시작에 가깝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어떻게 반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가’다. 주총 이전부터 명확한 기준과 논리를 공개하고, 다른 투자자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시장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학계 전문가는 이를 ‘깃발’에 비유하며 “국민연금이 선제적으로 방향을 제시하면 다른 자문사나 투자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는 전체 안건의 약 5%에만 선별적으로 반대하면서도 주총 이전에 투표 방향과 사유를 공개하고 기업과의 사전 대화 등을 통해 적극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의결권 행사의 성패는 반대의 ‘횟수’가 아니라, 주총 이전부터 얼마나 영향력을 축적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연금의 다음 과제는 분명하다. 더 크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바꾸는 힘을 갖는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기관 투자가의 수탁자 책임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황선오 금감원 부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과 이행 평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진 만큼 이제 업계가 자본시장 참여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시장에서 ‘첫 번째 깃발’을 들고 변화를 이끄는 주체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유은정 기자
via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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