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역사 140년 만에 처음" 독일 회장이 서울로 달려온 진짜 이유 [원선웅의 인사이트]
||2026.04.20
||2026.04.20
올라 칼레니우스 CEO
메르세데스-벤츠가 서울을 월드 프리미어 무대로 선택했다. 브랜드 140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4월 20일 강남 안다즈 호텔에서 공개된 차는 디 올-뉴 일렉트릭 C-클래스. 올라 칼레니우스 CEO를 포함한 그룹 핵심 임원진이 대거 방한했고, 전 세계 80여 명의 외신 기자들도 함께 입국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삼성SDI와 다년간의 하이니켈 배터리 공급 계약이 체결됐다. 하루 동안 메르세데스-벤츠의 전동화 전략 핵심 이슈들이 서울에서 연이어 이어졌다.
규모보다 밀도 높은 시장
올라 칼레니우스 CEO
칼레니우스 CEO는 한국을 전 세계 5위 규모의 시장으로 꼽았다. 하지만 규모만 전부는 아니다. 그가 더 강조한 것은 한국 고객의 성격이었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혁신에 적극적이면서도,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타임리스한 우아함을 동시에 원하는 고객층. 그는 이 두 가지를 함께 갖춘 시장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은 이번 일렉트릭 C-클래스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첨단 기술과 전통적 품위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곳에서 첫 공개를 하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전동화된 GLC가 한국 시장에서 보여준 반응도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가이젠 세일즈 총괄은 전기 C-클래스에 대한 국내 잠재 수요를 이미 확인했음을 밝혔다.
40개 모델, 그리고 현실적인 속도 조절
이날 라운드테이블에서 칼레니우스 CEO는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 동안 전 세계에 40여 개 신모델을 출시한다고 전했다. 그중 상당수가 순수 전기차다. 유럽에서는 이미 전동화된 CLA, GLB, GLC가 출시돼 강한 주문 입고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전동화가 시장마다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150개가 넘는 전 세계 시장 각각의 규제 환경과 인프라, 소비자 성숙도가 다르기 때문에 배터리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첨단 내연기관까지 모든 파워트레인 선택지를 동시에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전동화에 아직 망설이는 고객들을 위한 차세대 내연 모델도 계속 투입된다. 특정 기술 하나에 올인하기보다 시장별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다.
한국 시장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된다. 전동화 비중이 해마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지만, 내연기관 수요가 여전히 공존하는 시장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C-클래스가 채운 빈자리
가이젠 총괄은 전동화 C-클래스 출시의 배경을 '공백 해소'로 설명했다. C-클래스는 1982년 첫 등장 이래 벤츠 라인업에서 가장 넓은 고객층을 보유한 모델이다. 전동화 포트폴리오가 확장되는 동안에도 이 핵심 세그먼트에는 전기차가 없었고, 고객 조사에서 실용성에 대한 요구가 뚜렷하게 확인되면서 이번 모델에 그 결과가 반영됐다.
사양을 보면 WLTP 기준 최대 762km 주행 거리, 800볼트 충전 시스템과 94kWh 배터리로 단 10분 충전에 325km를 확보할 수 있다. 기존 C-클래스 세단 대비 97mm 늘어난 휠베이스는 앞좌석 레그룸을 12mm 넓혔고, 프렁크는 101리터를 확보했다. 가족 단위 사용자까지 아우르겠다는 의도가 제원 곳곳에 담겨 있다. 4.5도 리어 액슬 스티어링으로 회전 직경을 11.2미터까지 줄였고, 에어매틱 에어 서스펜션을 옵션으로 제공한다. 역대 가장 스포티한 C-클래스라는 표현과 S-클래스처럼 부드럽다는 표현이 동시에 쓰인 것은 두 특성을 함께 구현하려 했다는 뜻이다.
배터리 공급망, 한국 비중의 확대
이날 라운드테이블에서 가장 실질적인 내용이 오간 영역은 배터리였다. 부르저 CTO는 벤츠의 배터리 조달 방식이 복수의 공급사로 구성된 글로벌 네트워크 구조임을 먼저 설명했다. 특정 차종이 아닌 MB 플랫폼 전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복수의 공급사를 확보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네트워크에는 중국계 업체, 유럽의 ACC, 그리고 한국 업체들이 함께 포함돼 있다.
이날 체결된 삼성SDI 계약은 지난해 11월 첫 회동 이후 약 5개월간의 논의를 거친 결과다. 다년간의 하이니켈 배터리 공급 계약으로, 부르저 CTO는 1월 방한 당시 시작된 협의가 4월 서명으로 이어진 과정을 직접 언급했다. 하이니켈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장거리 주행에 유리한 반면 열 안정성 관리가 까다로운데, 고성능 전기차 플랫폼에 적합한 선택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의 관계도 이날 재확인됐다. 지난해 10월 LFP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된 것이 공식화됐고, 이전에도 다양한 세그먼트에 배터리를 공급해온 협력사다. 고성능 세그먼트에는 하이니켈, 보급형 세그먼트에는 LFP를 배분하는 방식을 통해 두 파트너십의 역할이 어느 정도 구분된다.LG와의 협력이 배터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부르저 CTO는 이번 일렉트릭 C-클래스에 탑재된 39.1인치 MBUX 하이퍼스크린의 공급사가 LG임을 직접 언급했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를 동시에 공급하는 복합 파트너로서 LG의 위상이 확인된 셈이다.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질문에는 "삼성SDI를 포함한 여러 파트너들과 논의 중"이라는 선에서 답변이 마무리됐다. 상용화 일정이나 구체적 계약 논의는 아직 이른 단계로 보인다.
NVIDIA 기반 자율주행, 내년 한국 도입 예고
자율주행 시스템에 관한 부르저 CTO의 발언은 구체적이었다. NVIDIA와 협력해 개발한 'MB.드라이브 어시스트 프로', 이른바 알파마요 시스템의 한국 도입 시점을 "내년 정도"로 제시했다. 규제 당국의 승인 여부에 따라 일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운용 중이고 중국에서는 모멘타와 별도 파트너십으로 적용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시스템 구조는 두 레이어로 이뤄진다. 기본적인 클래식 레이어 위에 NVIDIA 알파마요의 엔드 투 엔드 레이어가 올라가는 방식으로, 알파마요 레이어가 추가되면 시스템의 학습 속도와 효율이 높아진다. 서울처럼 복잡한 도심 환경에서 이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고 했다. 알파마요 레이어에서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클래식 레이어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구조여서 안전성도 이중으로 확보된다.
이 모든 소프트웨어를 통합 관리하는 것이 MB.OS다. 인포테인먼트와 자율주행 기능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고, OTA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지속적으로 갱신할 수 있다. 한국 시장에서는 T맵과의 연동이 이 운영체제 기반에서 구현된다.
레거시의 재정의
올라 칼레니우스 CEO
SDV와 AI 시대에 전통적 완성차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시각에 대해 칼레니우스 CEO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데 있어 140년의 역사가 장애물이 아닌 자산이 된다는 논리였다. 안전성, 품질, 내구성, 주행 감각, 디자인 정체성. 이런 전통적 강점에 AI와 소프트웨어가 더해지면 결과물의 수준이 배가된다는 것이다. "1 더하기 1이 3이 된다"는 그의 표현은 수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수렴점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C-클래스의 역할이기도 하다.
청원동 화재 사고와 이번 서울 프리미어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는 마티아스 바이틀 코리아 대표이사가 답했다. 피해 주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먼저 전하고, 현재도 지원이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행사는 그 사안과 별개로, 한국 시장과 고객에 대한 브랜드 차원의 존중을 표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술 너머, 벤츠다움의 자리
최근 GLC와 이번 C-클래스로 이어지는 새로운 디자인 언어, 즉 화려한 LED 그릴과 디지털화된 실내 구성이 벤츠 고유의 우아함에서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다. 칼레니우스 CEO의 답은 뜻밖에도 슈투트가르트 박물관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조상 격인 W108, 최근 공개된 벤츠 전기차들의 대형 그릴과 닮아 있다.
1901년 제작된 빌라 마이바흐의 심플렉스 메르세데스, 냉각을 위해 설계된 레이싱카에 달린 허니콤 그릴. 그 형태가 125년이 지난 지금 이 C-클래스의 고해상도 LED 그릴 안에서 여전히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기술의 외형은 세대마다 바뀌었지만, 그 안을 흐르는 디자인의 정체성은 끊긴 적이 없다는 논리다. 그는 이것을 "붉은 실"이라고 표현했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미래까지 닿는 실. 전동화 비중, 배터리 공급망, 자율주행 로드맵. 숫자와 기술 스펙이 오가는 자리에서 브랜드의 본질이 다시금 언급되는 순간이었다.
배터리 공급망 확충, 자율주행 기술 도입 로드맵, 핵심 세그먼트의 전동화 완성. 벤츠가 이 세 가지를 같은 날, 같은 도시에서 공개한 것은 한국 시장을 판매처 이상의 전략적 파트너십의 거점으로 위치시키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중심을 관통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알아볼 수 있는 벤츠다움이다. 그 믿음이 이번 서울 프리미어의 바탕에 깔려 있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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