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AX코리아③] 공정 데이터 없으면 AX도 없다...제조 AI 전환 잰걸음
||2026.04.20
||2026.04.20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우리도 AX 하자. 관련 브리핑을 준비해라." 만약 제조 현장에서 담당자가 이런 지시를 받았다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AX를 하면 스마트팩토리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같지 않다.
과거 공장 자동화(FA)는 사전에 정의된 프로그램에 따라 생산 기기가 일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생산 설비가 능동적으로 판단하는 기능은 없었고, 소품종 대량 생산에 최적화된 구조였다. 스마트팩토리는 여기에 IoT, 빅데이터, 사이버 물리 시스템(CPS) 등을 접목해 한 단계 진화한 공장이라 할 수 있다.
한국IR협의회에 따르면 설비 간 실시간 정보 교환, 가상 공간에서의 시뮬레이션, 생산 현황에 맞춘 자동 수발주 등이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단계에서 데이터의 역할은 '수집·모니터링'에 머문다. 공정 이상이 발생하면 데이터를 보고 사람이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결정해야 했다.
AX, 이른바 AI 전환은 지점에서 갈라진다. AI가 공정 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해 이상 원인의 경우의 수를 도출하고, 솔루션까지 제안하는 단계다. 사람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판단까지 수행한다는 점이 결정적 차이다. LG디스플레이의 표현을 빌려면 'AX 팹'이다. 스마트팩토리가 사람의 역할을 기계나 시스템이 대체하는 데 그쳤다면, AX 팹은 공정·설비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하고 AI 기술을 더해 지능적이고 자율적인 운영을 실현하는 공장이다.
개념의 차이는 숫자로 드러난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OLED 전 공정에 자체 개발한 AI 생산 체계를 도입했다. 성과는 설계 단계부터 나타났다. 이형(異形) 디스플레이의 곡면 패널 엣지 설계에 자체 개발한 '엣지 설계 AI 알고리즘'을 적용한 결과, 기존 1개월 걸리던 도면 생성이 8시간으로 줄었다. 종전에는 패널 외곽부 디자인에 맞춰 보상 패턴을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다른 형태로 설계해야 했고, 불량이 발생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AI를 도입하고 난 후 곡면과 좁은 베젤에 필요한 패턴을 자동으로 설계하면서 오류율이 현저히 낮아졌다. 시야각에 따른 OLED 색 변동을 최적화하는 광학 설계도 5일 이상 걸리던 작업이 8시간 만에 완료된다. 설계안 작성부터 검증, 제안까지 전 과정을 AI가 수행하는 방식이다.
제조 현장에서의 변화는 더 크다. OLED 제조 도메인 지식을 학습한 AI가 공정에서 발생 가능한 이상 원인의 경우의 수를 자동 분석하고 솔루션까지 제안한다. 전체 생산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수집한 공정 데이터를 AI가 자동 분석해 리포트를 작성하고, 이상 원인이 되는 장비 작동을 자동으로 보류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품질 개선 소요 시간이 3주에서 2일로 단축됐고, 양품 생산 확대로 연간 2000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가 나왔다. 회사는 향후 AI가 스스로 생산성 개선 방안을 제안하고 장비를 제어하는 단계까지 발전시킬 계획이다.
◆FA→스마트팩토리→AX, 결정적 차이는 'AI가 판단하느냐'
중국은 국가 단위로 이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 2015년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통해 제조업을 국가 경쟁력으로 규정한 뒤, 10년간 FA에서 스마트팩토리를 거쳐 AI 기반 지능화까지 3단계 전환을 체계적으로 압축 추진했다. 주요 제조 공정의 스마트화와 중점 산업 분야의 디지털 작업 현장 구축이 중점 프로젝트로 꼽혔다.
그 결과가 등대공장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하이얼은 올해 1월 칭다오 정수 필터 공장이 추가 선정되면서 WEF 등대공장을 13개로 늘렸다. 슈나이더일렉트릭과 함께 세계 공동 최다다. 칭다오 공장은 정수 처리 전 단계에 AI를 전면 통합한 것이 특징이다. AI 알고리즘과 32개 디지털 기술 솔루션을 적용해 품질 40% 개선, 품질 보증 비용 72% 절감, 평균 재고 보관 기간 53% 단축을 달성했다. WEF에 따르면 중국 전체 등대공장은 84개로 세계의 약 42%를 차지한다. 미국(32개)·독일(18개)·일본(15개) 3국을 합산해도 65개로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
하이얼의 저우원제(周云杰) 회장은 "AI와 로봇 기술 융합은 제조업 고도화와 미래 생산력 형성의 전략적 핵심"이라며, 향후 5년간 AI·반도체·IoT 보안 등 기초 기술 분야에 1000억위안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이얼의 AI 도입 속도는 단순한 기술 투자를 넘어, 기존 공정을 과감히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축하는 기업 문화에서 비롯된다. WEF가 이전에 선정한 하이얼의 등대공장에도 상하이 커넥티드 세탁기 공장, 최첨단 냉장고 공장 등이 포함돼 있어, AI 적용 범위가 특정 제품군에 국한되지 않고 가전 제조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공장은 지금 어디쯤일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면, AX는 스마트팩토리가 아니라 스마트팩토리의 '다음 단계'다. FA(자동화) → 스마트팩토리(데이터 기반 능동 대응) → AX(AI 기반 자율 판단)로 이어지는 3단계 진화 구조에서, 대다수 국내 제조 기업은 1~2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AX 하자'는 지시에 대한 브리핑 첫 장이 우리 공장이 지금 어느 단계인지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기 진단이 우선해야만 AI 도입도 가능하다. 만약 공정 데이터 수집 체계가 갖춰진 기업이라면 AI 레이어만 추가해도 단기 성과를 낼 수 있다.
LG디스플레이가 연간 2000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을 이뤄낸 것도 수년간 축적한 OLED 공정 데이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대로, 공정 데이터 자체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AI를 도입하면 학습할 소재가 없어 효과가 제한적이다.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건너뛰고 AX로 곧바로 도약하기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시간이다. 중국이 국가 전략으로 10년간 3단계를 압축 전환하는 사이, 국내 제조업의 전환 속도가 뒤처지면 기술 격차는 비용 격차로 직결된다. 이영주 LG디스플레이 제조 AI 실장은 "중국 업체의 도전이 굉장히 거센 상황"이라며 "지속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AI"라고 밝혔다.
정부도 이 같은 위기감을 반영해 제조AI특화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1000여 개 기업·대학·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제조 AX(M.AX)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켰다. 2030년까지 AI 팩토리 500개 보급, 100조원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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