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왕창 먹고 공부”… 청소년 과다복용 창구된 ‘창고형 약국’
||2026.04.14
||2026.04.14
“오늘도 40T(40알) 완료” “0000(약 이름)의 힘. 공부 잘됨”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잇달아 올라온 게시물이다. 작성자는 자신을 2013년생이라고 밝히며 감기약 수십알과 빼곡한 필기 노트를 함께 인증했다. 정량을 넘겨 복용하면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청소년 사이에서 이른바 ‘OD(Overdose·과다 복용)’를 인증하는 게시물의 한 사례다.
이 같은 OD 인증이 번지는 가운데, 약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경로로 ‘창고형 약국’이 지목되고 있다. 미성년자의 의약품 대량 구매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약 어렵게 사지 마”… 창고형 약국 추천 글 확산
14일 엑스(X)에는 ‘OD 대피소’라는 이름의 커뮤니티가 있다. 3000여명이 가입해 있다. 이곳에는 주변의 감시를 피해 약을 복용하는 방법이나, 의심을 피하고 대량으로 구매하는 요령을 공유하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단순 정보 교환을 넘어 사실상 약물 오남용을 조장하는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이들 사이에선 창고형 약국이 주요 구매 창구로 거론된다. 한 이용자는 “동네 작은 약국은 깐깐하게 묻지만, 사람 붐비는 대형 약국은 괜찮다”며 “다들 약 어렵게 사지 말라”라고 적었다.
또 다른 이용자는 “대형 약국에선 ‘하루 한알 이상 먹지 마세요’라는 말만 하고 줬다”며 “이렇게 000(수면 유도제) 5통을 사 왔다”고 했다.
◇수면 유도제 대량 구매해도 ‘결제 가능’
창고형 약국은 마트처럼 넓은 진열대와 카트를 갖춘 형태의 약국이다.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어 편의성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문제는 대량 구매에 대한 제지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날 서울 용산구의 한 창고형 약국을 찾았다. 청소년들이 OD 인증에 자주 언급하는 일반의약품이 진열돼 있었다. 수면 유도제 A 약품 5박스를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가져가자, 별다른 확인이나 제지 없이 결제가 진행됐다.
같은 날 방문한 서울시 마포구의 또 다른 창고형 약국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 관광객까지 몰린 매장에선 계산대가 빠르게 돌아갔고, 구매 목적이나 복용량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두 곳 모두 대량 구매가 사실상 제한 없이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A 약품에는 ‘메틸에페드린’ 성분이 들어 있다. 과다 복용 시 각성 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 일부 청소년 사이에서 오남용 사례가 보고된 성분이다. 불법 마약류 제조의 원료로 사용된 전력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2월 불법 마약류 제조를 막기 위해 A 약품의 1인당 1회 판매량을 ‘4일 치’로 제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강제 규정이 아닌 권고 사항이다. 일반 의약품 판매는 약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오남용 우려가 있는 의약품을 설명 없이 청소년에게 판매하는 행위는 약사 윤리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며 “윤리위원회 심의 의결을 거쳐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청소년 과다 복용 대책 마련해야”
정부도 대응에 나섰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약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약국명에 ‘창고형’ ‘공장형’ 등의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소비자를 과도하게 유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청소년의 과다 복용 문제를 막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은 대량 구매 이후 추적이 쉽지 않아 오남용 관리에 한계가 있다”며 “청소년 OD는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보고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문제 가능성이 있는 일반의약품을 중심으로 추가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소비자층에 따라 문제가 되는 의약품 등은 약사회와 별도의 관리 체계를 논의해 나가자고 제안한 상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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