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⑬ 시황제의 탄생, 시진핑의 과욕인가 공산당의 선택인가 下
||2026.04.14
||2026.04.14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헌법 개정을 통해 3연임 이상을 할 수 있도록 해 장기 집권의 문을 다시 열었다. 이로써 중국 정치권력 구조는 ‘집단지도 체제 통치 구조’에서 ‘1인 중심 권력 집중’으로 재편됐다. 서방에선 이를 두고 “마오쩌둥의 1인 독재 부활”이라는 평가까지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권력 집중이 향후 중국의 정치적 안정성과 경제 운영 방식을 규정하는 구조적 상수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통치 행위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 운용에 직간접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시진핑을 과연 1인 독재자로 규정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의 권력 행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독재자의 통치 행위와 유사한지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 전형적 독재와 중국 공산당 통치의 비교
전형적인 독재 체제는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경제적으로는 권력자와 측근의 이익을 위한 구조적 부패가 만연하고, 정치적으로는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다. 정책은 지도자의 취향이나 포퓰리즘에 따라 흔들리며, 결국 국가 운영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이 전형적 궤도 위에 올라선 것일까.
첫째는 경제적 측면으로, 시진핑 주석과 그 측근 네트워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적 부패가 만연하고 있는지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지도자와 권력자들의 자녀 및 측근의 부패를 통한 재산 축재를 일정 부분 용인하는 정책을 유지해 왔다. 덩샤오핑이 일인자던 시기에는 혁명 원로의 자녀들이 민영화의 수혜를 입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장쩌민·후진타오 주석 시기에는 고위 인사 자녀들이 인맥을 활용해 주요 산업 분야에서 신흥 재벌로 떠올랐다. 여기에 공산당 지위를 이용한 부패까지 겹치며 정부 기관 인사들까지 신흥 부유층으로 편입됐다. 부패의 규모와 범위는 공산당 체제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시진핑 주석의 “호랑이든 파리든 다 때려잡는다”라는 부패 척결 정책은 2012년 집권 초기부터 본격화한다. 이는 대규모 반부패 캠페인으로 고위 간부(호랑이)부터 일반 당원(파리)까지 처벌한다는 정책이다. 2012년부터 2025년까지 500만 명 이상의 당(黨)·정(政)·군(軍) 관리가 부패로 처벌됐다. 이 가운데에는 부장급(우리의 장관급)인 ‘호랑이’ 200여 명과 장군 100여 명 등 시 주석의 측근들도 대거 포함됐다. 지금도 군부의 고위직과 금융권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부패 척결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직접 경험한 사례를 통해 부패 척결의 방향과 진위를 추론해 본다. 2010년부터 필자는 당시 시진핑 국가 부주석의 가까운 가족 중 한 명과 장기간 교류했다. 한국과의 경제·문화 교류를 위한 검토를 위해 일정 준비와 방문에 동행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중국 현지에서 이 인사와 연결된 경제 관련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당시 분위기는 조만간 시진핑 주석 시대가 열리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식의 자신감이 주변에 팽배했다.
시 주석의 큰 누나는 오랜 기간 부동산 등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상당한 부를 이룬 사업가였다. 특히 칭화대 EMBA 과정을 수료한 뒤에는 한동안 칭화대 EMBA 과정을 중국 인맥의 최고 정점으로 만들었다. 단지 칭화대 EMBA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국에 수많은 EMBA 과정 수료자가 시진핑 주석 가족의 인맥이라고 외치는 촌극이 벌어졌다. 실제 필자 지인(시진핑 주석 누나의 동기)의 결혼식에 시진핑 주석 누나가 참석했을 때는 현지 정부 최고위 인사는 물론이고 경제계 인사들이 참석해 상당한 위세를 실감했다. 한동안은 시진핑 주석의 누나와 연을 맺으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가 각계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 주석의 누나, 가족과 경제적으로 엮인 주변 인사들도 시 주석의 부패 척결 캠페인과 함께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형식적 조치나 보여 주기 식 정리가 아닌, 실제 경제활동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가족이나 핵심 측근조차 부패의 척결 앞에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강한 메시지로 읽혔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시진핑 주석이 가족이나 정치적 측근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적 부패를 방치하거나 조장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쉽지 않다.
둘째는 정치적 측면으로, 권력의 극단적 중앙집중이 견제와 균형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는가이다. 일반적으로 ‘1인 독재 지배체제’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삼권분립 및 사법부의 역할을 무력화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형식적인 삼권분립 체제로, 일당 체제로 운영된다. 시진핑 주석 시기에도 이와 유사한 정치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시진핑 정권의 사법부는 역할을 강조하여 ‘법으로 국가를 다스리자’라는 캠페인을 강력히 진행하고 있다.
실제 시진핑 주석 시기부터 필자의 주변에서도 법의 심판을 받고 구속되거나 처벌받는 사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활동 영역에서 과거에 통용되고 인정되던 일들이 이제는 불법으로 판단돼 제재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동시에 지인들 사이에서 법률을 벗어난 사건의 해결 요청에 사적인 개입을 꺼리는 경향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정책 운용의 문제다. 독재 체제는 독재자의 개인적 취향과 포퓰리즘에 좌우되는 임의적 정책이 더해지면서, 국가 운영이 불안정성과 변동성을 키운다. 그렇다면 시진핑 체제 역시 그런 위험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가.
필자는 수년간 인민일보 사이트에서 주요 정부 정책이나 경제활동 기사를 필독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를 보면 중국 공산당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정책을 추론할 수 있다.
대체로 1면의 주요 내용은 시진핑 주석이 강조해 온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과 관련된 사안으로 채워진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신시대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 아래 중국식 현대화의 필연적 요구로 제시된다. 공산당 특유의 이념적인 색채를 띤 단기적인 이벤트성 기사가 아니라, 실사구시의 내용을 일관되게 소개하는 기사가 주를 이룬다. 산업 활동뿐만 아니라 전통문화 보호와 계승 발전, 서민 정책의 단순 편리화 그리고 도시 정비를 통한 생활 환경 개선 등 주제도 다양하다.
특히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기조가 유지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을 겨냥한 성과가 축적되고 있다. 이런 첨단 산업에서의 발전 사례를 보면, 정부 정책의 극단적인 불안정성과 변동성의 위험을 아직은 진단할 수 없다.
결국 시진핑 체제는 단순한 ‘1인 독재’라는 프레임으로만 해석하기 어렵다. 반부패는 권력 집중의 도구이자 동시에 체제 정비의 수단이며, 법치 강화 역시 통제와 질서 유지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이는 개인의 권력 욕망과 공산당 체제 생존 전략이 결합한 복합적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문제는 미래다. 중국 정치는 여전히 예측이 어려운 ‘럭비공’과 같다. 권력 집중이 장기적 안정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내부 균열의 씨앗이 될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한 이념적 평가를 넘어,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전략적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중국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과대 해석하는 것도 모두 위험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읽는 시선이다.
[편집자 주]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삼성 중국 지역 전문가로 대륙을 돌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CJ(제일제당) 중국사무소 대표를 지냈으며,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했고, 현지에서 화장품 유통업체 카라카라를 창업하기도 했다. 2012~2017년에는 중국 50대 민영기업 신화련그룹의 투자수석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이춘우 특임교수의 칼럼은 3주에 한 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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