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화, 美-이란 ‘노딜’에 리스크 지속… 수급 다변화 사활
||2026.04.12
||2026.04.12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국내 정유·석유화학사들이 원유·나프타 등에 대한 수입선 다변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 종전 협상 결렬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지속되며 개방은 더욱 불확실해졌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개방되더라도 통행료 부과, 개방 후 재봉쇄 등 향후 통제 리스크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수입국, 항로 등을 다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정유사들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대체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홍해 연안에 위치한 얀부항에서 실은 원유를 수송하는 운송로다.
에쓰오일(S-OIL)은 최대주주인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지원에 힘입어 최근 이 경로를 통해 원유를 들여왔다. HD현대오일뱅크는 얀부항을 통한 원유 수급에 나섰다. GS칼텍스 역시 이 항로를 통한 원유 일부 수급을 추진하고 있다.
친이란 국가나 이란 소유 선박 등 일부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가운데 26척의 한국 선박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대체 항로로 떠오른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바브엘만데브 해협 역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은 현재 미국·이란 간 협상 이전부터 걸프 지역 국가들이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가담하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유사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이에 정유사들은 원유 수입처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중동 지역 외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원유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사우디, 미국,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질, 호주, 콩고, 캐나다 등 17개국에서 대체 원유를 분산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원유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다만 수입선 다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산의 경우 가격이 비싸고 점도가 낮은 경질유를 수입하게 된다. 국내 정유사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점도가 높은 중동산 중질유에 최적화된 설비를 갖췄다. 미국산을 확대하려면 수조원대의 투자를 통해 경질유 정제설비로 전환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나프타 확보에는 더욱 비상이 걸렸다. 원유는 장기 계약으로 들여오지만 나프타의 경우 단기 계약 비중이 높아 이달 물량을 전달에 결정하기 때문이다. 올해 4월 나프타 수입량은 77만톤(t)으로 예년 대비 70% 수준에 머문다. 국내 나프타 생산량은 110만t이다. 이는 기존 대비 10~20%가량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오는 5월 나프타를 평시 대비 80% 수준으로 안정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오는 6월은 수급난 해소를 장담할 수 없어 중동 사태 장기화 시 매월 나프타 수급난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나프타 수급량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만큼 중동 사태 추이가 향후 수급난 해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2025년 기준 한국에 수입된 원유의 61%, 나프타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났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이 앞으로도 이란의 통제로 상시 위협에 시달릴 수 있어 장기적으로 수급처 다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대상으로 한 통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지 않는 원유 확보 노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수입선 다각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7일 카자흐스탄,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3개국을 방문해 원유·나프타 추가 확보에 나섰다. 특히 정부는 향후에도 봉쇄 등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지 않는 중장기적 원유 공급망 재편을 모색할 방침이다.
한편 미국과 이란은 4월 11~12일(현지시각)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21시간 동안 종전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다다르지 못했다. 양국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두고 입장 차이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즉각 개방을, 이란은 최종 합의 타결 이후 개방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 결렬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지속될 전망이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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