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화 지연에 고사 몰린 가상자산 산업 [줌인IT]
||2026.04.10
||2026.04.10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거래소’라는 이름에 갇혔다.
수익 다각화는 고사하고 추가 사업 모델조차 확장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 전반을 규율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처리가 지연되면서다.
제도는 비어 있고 규제만 남은 사이, 가상자산 산업은 움츠러들었고 사실상 ‘현물 거래 중개’ 하나에만 매달리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이는 국내 거래소 수익이 거래 수수료에만 의존하는 형태로 고착화되도록 해 거래량이 줄면 실적이 무너지는 취약한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시장 침체로 거래대금이 급격히 감소하자 주요 거래소들의 영업이익도 쪼그라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법인 거래 허용, 스테이블코인 연계 서비스, 파생상품 거래 등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사업 모델조차 국내에선 규제 불확실성에 가로막혀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글로벌 거래소와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코인베이스는 단순 거래를 넘어 파생상품 거래, 스테이킹, 가상자산 담보 대출, 기관 대상 서비스,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종합 디지털자산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반면 국내 거래소는 규제에 묶여 사실상 중개업 외에는 이렇다할 서비스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 등 새로운 시도도 ‘투자자 보호’라는 명목하에 가로막혀 번번이 제동이 걸리거나 축소됐다.
이제는 거래소를 공공 인프라로 봐야 한다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이를 근거로 거래소 대주주의 지분을 제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민간에서 만든 시장에 공공 인프라 수준의 책임을 부여하고 권한과 기회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투자자 보호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규제만 앞세운 접근이 보호인지는 의문이다. 일각에선 오히려 투자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사이 이용자는 시장을 떠나고 있다. 침체된 시장에서 유동성까지 위축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지금의 가상자산 시장은 갈림길에 서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단순 매매 창구로 둘 것인지, 글로벌 흐름에 맞는 금융 인프라로 키울 것인지는 금융당국의 판단에 달렸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지금의 가상자산 시장이 규제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는 사실이다. 당국의 오판으로 멀쩡한 시장 하나가 죽어나가는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서영 기자
insyo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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