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강국 스위스] ③ 로켓 발사대 하나 없지만… ‘틈새 시장’ 공략해 우주 강국으로 성장
||2026.04.09
||2026.04.09
지난 3월 27일(현지 시각), 스위스 루체른 엠멘 공군기지 인근에 위치한 우주기업 비욘드 그래비티 공장. 거대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높이 약 20m에 달하는 반원뿔 형태의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사체에 실려 우주로 향하는 인공위성 등 탑재체를 열과 공기저항으로부터 보호하는 페어링(덮개)이다.
페어링은 발사 후 일정 고도에서 두 개로 분리된다. 정해진 시점에 양쪽이 정확히 갈라지는 기술은 우주 발사체 분야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지난해 말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발사된 유럽우주국(ESA)의 차세대 발사체 ‘아리안 6’에도 비욘드 그래비티의 페어링과 단열재가 적용됐다.
비욘드 그래비티는 전 세계 로켓의 ‘지붕’이라 불리는 페어링 시장에서 최대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우주 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 II’에도 이 회사의 기술이 쓰였다. ‘오리온’ 우주비행사들이 비행하는 동안 태양으로부터 전력을 확보하도록 하는 태양전지판 구동 장치(SADM)를 공급한 것이다.
◇정밀 기술로 우주 산업 경쟁력 확보
비욘드 그래비티의 경쟁력은 스위스 우주 산업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정밀 기술에서 비롯된다. 스위스는 자국 영토 내에 로켓 발사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정밀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우주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대형 로켓 개발에 집중하기보다는, 발사체와 위성을 작동시키는 초정밀 부품과 소재 기술에 주력해 왔다. 정밀 시계 산업에서 축적된 장인정신이 우주 산업에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그 결과 스위스는 제조와 시스템 기술을 중심으로 우주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유럽의 위성 항법 시스템 ‘갈릴레오’에 탑재된 원자시계도 스위스가 만들었다. 국영 방산그룹 루아그(RUAG)에서 시작한 ‘비욘드 그래비티’는 지난 2022년 독립 후 유럽 최대의 우주 부품 공급사로 성장했고, 로잔연방공대(EPFL) 스핀오프 기업인 ‘클리어 스페이스’는 세계 최초로 ESA와 우주 쓰레기 제거 상업화 계약을 체결했다.
스위스의 기술력은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 곳곳에서도 확인된다. 1969년 아폴로 11호를 통해 인류가 처음 달에 착륙했을 때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면에 가장 먼저 설치한 장비는 미국 국기가 아니라 스위스 베른대 연구진이 만든 ‘태양풍 측정 장치’였다. 베른대는 이후에도 수성 탐사선 베피 콜롬보, 목성 위성 탐사선 주스(JUICE) 등 주요 국제 임무에 참여하며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韓도 우주 컴퓨팅 등 틈새 노려야”
스위스의 ‘틈새 시장’ 전략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강대국과 규모 경쟁을 벌이기보다, 자신만의 ‘니치(niche·틈새)’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누리호 4호 발사 성공으로 세계 7번째 발사체 보유국이 됐지만, 뒤늦게 우주 산업에 뛰어든 만큼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달 25일 베른대에서 만난 니콜라스 토마스 실험물리학 교수는 “한국의 우주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한국은 이중용도 기술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지정학적 환경에 놓여 있고, 기술 수준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한국의 우주 기술은 군사용을 넘어 다양한 활용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우주 과학 확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NASA에서 여러 우주 탐사 임무를 총괄했던 토마스 주르부헨 취리히연방공대(ETH) 교수는 지난달 23일 “15년 전만 해도 스페이스X의 연간 로켓 발사 횟수는 4회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약 165회로 늘었고 앞으로는 하루 한 번 이상 발사가 이뤄질 것”이라며 “이제 우주 산업의 핵심 수익원은 로켓이 아니라 서비스”라고 말했다. 위성 데이터, 통신, 이미지, 우주 컴퓨팅 등 로켓을 ‘활용’하는 분야에서 수익이 창출되고 있다는 의미다.
주르부헨 교수는 “한국은 강력한 기술 기반을 갖고 있으며 특히 컴퓨팅과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이 크다”며 “이를 우주 산업에 적극적으로 접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위성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지 않고 우주에서 인공지능으로 처리하는 ‘우주 컴퓨팅’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한국이 이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각 국가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우주 산업에 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님만을 위한 맞춤 차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