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강국 스위스] ② 민간 주도에 정부는 돕기만 할 뿐…15년 연속 혁신 1위 비결 ‘작은 정부’
||2026.04.08
||2026.04.08
“정부는 특정 우주 분야에 집중할지를 미리 정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어떤 제안이 나오는지를 보고, 그에 맞는 지원 프로그램을 설계할 뿐입니다.”
지난 24일(현지 시각) 베른에서 만난 요나스 하비히 스위스우주국(SSO) 과학자문관은 스위스 우주 산업의 특징을 이같이 설명했다. 스위스는 유럽의 대표적인 우주 강국이다. 50년 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뒤 수행한 첫 실험도 스위스가 개발한 태양풍 측정기였다. 이후 스위스는 위성, 로켓 부품, 우주 로봇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워왔으며, 유럽우주국(ESA)의 창립 멤버이자 주요 기여국으로 자리 잡았다.
놀라운 점은 스위스 우주 정책을 총괄하는 SSO 인력이 단 15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정부 조직은 작지만 산업은 강한 구조다. 정부가 산업의 방향을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고, 기업과 대학 등 민간 현장에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산업의 흐름을 이끈다. 스위스 정부는 그 흐름이 확인된 이후에야 지원에 나선다. 대학과 기업이 중심이 되는 ‘상향식(Bottom-up)’ 체제는 스위스 우주 산업을 넘어 국가 전체 경쟁력의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 아이디어가 산업이 되는 ‘이노베이션 파크’
이러한 상향식 구조는 ‘스위스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된다. 스위스 이노베이션 센터는 산학연 혁신 생태계 구축과 연구 상용화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설립한 비영리 기구다. 현재 취리히, 로잔 등 전국 6곳에서 이노베이션 파크를 운영 중이며, 약 700개의 기업과 연구기관이 입주해 있다. 이 중 우주 산업에 집중하는 곳은 취리히 이노베이션 파크다.
스위스 이노베이션 파크는 단순한 사무 공간을 넘어 기업, 연구자, 공공기관을 잇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대표적 사례인 ‘포물선(Parabolic) 비행 프로그램’은 2015년 연구자들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항공기를 포물선 궤적으로 비행시켜 무중력 상태를 만든 뒤 물리·생명과학 실험을 수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10년 넘게 운영되며 국제우주정거장(ISS) 실험으로까지 확장됐다. 연구 성과 일부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피직스’에 게재되기도 했다.
코라 티엘 스위스·리히텐슈타인 우주항공센터(CSA) 국제협력 디렉터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정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시작한다”며 “이렇게 출발한 프로젝트가 유기적으로 성장해 성과를 입증하면 그때 정부가 지원에 나서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혁신 체계는 지역과 분야를 불문하고 동일하게 작동한다. 로잔 이노베이션 파크(PARK WEST EPFL)는 로잔연방공과대(EPFL) 등 인근 학술 인프라를 중심으로 지난 10년간 300개 이상의 딥테크 스타트업을 배출했고, 50억 달러(약 7조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오반니 포르첼라나 부소장은 “우리의 목표는 기업들이 연구 생태계와 자연스럽게 협력할 역량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라며 “대기업이 학계와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때 가장 큰 가치가 창출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에는 TSMC,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등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 ‘작은 정부’가 만든 혁신 강국
현장이 정책을 견인하는 상향식 구조는 스위스 특유의 정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와 지방 분권이 발달한 스위스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시민과 지역 사회의 선택을 우선시한다. 산업 정책 역시 민간에서 형성된 흐름을 중앙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정부 개입을 최소화한 구조는 역설적으로 높은 효율을 낳았다. 학계와 기업은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파괴적 혁신’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스위스는 세계혁신지수(GII)에서 15년 연속 1위를 기록 중이다.
제도적 뒷받침도 강력하다. 규제는 완화하되 지식재산권(IP) 보호는 철저하다. 평균 법인세율은 약 12% 수준이며, IP 소득에 대해서는 최대 90%의 세제 혜택을 준다. 특히 ‘유럽 속의 미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기업 친화적인 환경도 스위스의 강점으로 꼽힌다.
이에 힘입어 구글은 미국 외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취리히에 세웠고,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메타,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들도 스위스를 유럽 거점으로 삼고 있다. 이는 다시 국내 학계와 스타트업 간 협력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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