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 바퀴만 돌렸을 뿐인데" 메르세데스-벤츠,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 체험기 [원선웅의 인사이트]
||2026.04.03
||2026.04.03
좁은 주차장에서 스티어링 휠을 몇 바퀴나 감아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손목을 꺾고, 다시 잡고, 또 돌리고. 그 동작을 반복하는 게 운전의 일부라고 생각해왔는데,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을 경험하고 나서 그 생각이 달라졌다.
자동차에 스티어링 휠이 처음 등장한 건 1894년이다. 프랑스 엔지니어 알프레드 바쉐롱이 파리-루앙 구간 주행에서 처음 달았고, 그 이후 130년이 넘도록 스티어링 휠과 앞바퀴는 항상 물리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칼럼이 있고, 기어가 있고, 랙이 있었다. 드라이버가 휠을 돌리면 그 힘이 그대로 바퀴에 전해지는 구조였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스티어 바이 와이어는 그 오랜 구조에서 벗어났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그 움직임이 전기 신호로 바뀌어 케이블을 타고 전달되고, 바퀴를 실제로 움직이는 건 그 신호를 받은 액추에이터다. 스티어링 피드백 유닛(SFU)이 드라이버의 입력을 읽어 스티어링 랙 유닛(SRU)으로 신호를 보내고, SFU는 동시에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조향 감각을 만들어낸다. 기계가 손에 전해주던 그 느낌을, 소프트웨어가 계산해서 재현하는 방식이다.
탑승 전에는 조향 반응이 손과 따로 노는 느낌이 나지 않을까. 노면 감각이 뚝 끊겨 있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도 있었다. 요크 형태의 스티어링 휠도 처음엔 낯설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차를 움직여 보니 그런 걱정들은 기우였다. 조향이 매끄럽고, 손의 감각과 차의 움직임 사이에 어색한 틈이 없다. 아직 개발 단계인데도 완성도가 꽤 높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가장 또렷하게 차이를 느낀 건 저속 기동 구간이었다. 길 앞에 다른 차량이 가로로 주차된 상태에서, 일반적인 차량이라면 스티어링을 몇 바퀴 감아야 할 텐데 이 차는 180도 남짓 돌리는 것만으로 큼직한 차체가 깔끔하게 빠져나갔다. 그걸 보고 나서야, 그동안 주차할 때마다 당연하게 반복하던 그 동작이 사실은 꽤 번거로운 일이었구나 싶었다.
빠르면 안정적으로, 느리면 민첩하게
이게 가능한 건 가변 스티어링 비율 덕분이다. 기계적인 기어비에 묶여 있지 않으니, 시스템이 속도와 상황에 맞게 조향 비율을 실시간으로 조절한다. 저속에서는 적은 입력으로 큰 각도를 만들고, 속도가 붙으면 반응을 절제해 안정성을 챙긴다.
기존 방식에서 이 두 가지는 늘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관계였다. 저속에서 민첩하게 세팅하면 고속에서 예민해지고, 고속 안정성을 높이면 저속에서 둔해졌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에서는 그 조율을 소프트웨어가 대신 담당한다.
여기에 최대 10도까지 작동하는 후륜 조향이 더해지면서 기동성과 직진 안정성이 함께 올라간다. 원선회 코스에서 스티어링 휠을 160~170도 정도만 돌리는데 대형 차체가 라인을 벗어나지 않고 부드럽게 계속 돌아가는 장면은, 실제로 보면 꽤 묘한 기분이 든다.
스포츠 모드에서 달라지는 손맛
주행 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바꾸자 조향의 질감이 바뀌었다. 반응이 조금 더 예리해지고, 스티어링 휠에서 느껴지는 피드백의 밀도가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테스트랙에서 속도를 마음껏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 온전히 체감하기엔 아쉬움이 있었지만, 방향은 충분히 읽혔다.
조향 특성이 소프트웨어로 결정되다 보니, 같은 플랫폼이라도 브랜드마다, 차종마다, 트림마다 다른 스티어링 감각을 만들 수 있다. 세단과 SUV가 손맛이 다르고, 일반 트림과 고성능 트림이 전혀 다른 반응을 가져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노면 진동도 마찬가지다. 기존에는 거친 노면의 충격이 스티어링 휠로 그대로 올라왔는데, 이 시스템에서는 무엇을 드라이버에게 전달하고 무엇을 걸러낼지를 설계 단계에서 정할 수 있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물리적 전달의 결과물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의 판단이 되는 셈이다.
만약 끊기면 어떻게 되나
만약 조향 상황에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를 '이중 안전장치'로 해결했다. 신호 경로와 액추에이터, 차량 내 데이터 네트워크, 전원 공급까지 모두 2개의 시스템으로 구성됐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이 오면 후륜 조향과 ESP의 바퀴별 제동 개입으로 방향을 유지한다. 100만 킬로미터 이상 테스트를 진행했고, 실제 도로와 시험장에서의 검증도 비슷한 규모로 쌓았다.
2013년 닛산의 인피니티 브랜드가 처음 이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하려 했을 때, 메르세데스-벤츠도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의 개발을 시작했었지만 상용화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테슬라 사이버트럭이 스티어 바이 와이어를 채택하면서 다시 관심이 모였고, 이제 메르세데스-벤츠는 2026년 올해, 양산모델 공개를 앞두고 있다.
조향 말고도 바뀌는 것들
스티어링 컬럼이 실내를 가로지를 필요가 없어지면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 달라진다. 스티어링 휠은 더 납작하게 만들 수 있고, 아랫면을 평탄하게 처리하면 타고 내릴 때도 편해진다. 디스플레이를 향한 시야도 자연스럽게 트인다.
마르쿠스 셰퍼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최고기술책임자는 "SAE 레벨 3 조건부 자율주행과 결합하면 중장기적으로 훨씬 몰입감 있는 경험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자율주행 구간에서 드라이버가 잠깐 핸들에서 손을 놓고 화면을 볼 때, 납작해진 스티어링 휠이 만들어낸 여유 공간이 그 경험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전기 신호 기반의 조향은 자율주행 제어 측면에서도 다루기 수월하다. 기계적 연결을 유지한 채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신호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제어 통합에 훨씬 깔끔하게 맞아들어간다.
한 차원 높은 주행 경험
테스트를 끝내고 차에서 내리면서 든 생각은 주차할 때마다 스티어링을 몇 바퀴씩 감아온 게 사실은 '기술의 한계'에 몸을 맞춰온 거였구나라는 점이었다.
양산 모델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조향할 때 들리는 작동음은 양산 모델에서는 들리지 않을 거라는 설명이 더해졌다. 하지만 이 기술이 운전자에게 새로운 주행 경험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130년 넘게 이어져 개발의 역사가, 이제 실현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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