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판을 키우는 디지털 지도 전쟁 [기고]
||2026.04.03
||2026.04.03
전쟁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탱크와 전투기, 미사일과 항공모함의 숫자를 겨루는 싸움이었다면, 지금의 전쟁은 좌표와 데이터,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반도체와 플랫폼이 맞물리는 복합전이다. 이란-미국 전쟁 국면은 그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복수 외신을 통해 공개된 성명에서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팔란티어 등 미국 ICT·AI 기업 18곳을 이른바 "합법적 타격 목표"로 지목했다.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는 아마존 AWS의 중동 데이터센터들이 실제로 피격돼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다. 전쟁이 더 이상 전통적 방산기업만의 무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보다 선명한 적은 없었다.
왜 빅테크가 전장의 핵심 인프라로 겨냥되는가. 현대전은 좌표를 먼저 장악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경로로 움직이는지, 어느 시설이 취약한지를 읽어내는 능력이 전장의 승패를 좌우한다. 지도는 더 이상 길찾기 배경이 아니다. 좌표와 속성, 관계가 결합된 구조적 데이터로서, 현실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디지털 전장의 운영체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이 사실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상업 위성영상과 공개 출처 정보(OSINT) 분석은 전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해석하는 도구가 됐다. 가자 전쟁은 이 흐름을 더 날카롭게 드러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자체 개발한 AI 표적 식별 시스템 라벤더(Lavender)의 활용이 보도되면서, 전장의 의사결정 구조 안으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얼마나 깊숙이 들어왔는지가 드러났다. 유엔 인권 전문가들도 2024년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AI 및 관련 군사 지침을 사용해 민간인 피해를 키웠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전쟁은 이제 화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정교한 지도와 데이터를 쥐고, 더 빠르게 분류하고 판단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팔란티어는 이 전환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팔란티어는 2024년 이스라엘 국방부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팔란티어 측은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군사 임무에 제공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제 인권 단체와 연구자들은 AI 기반 표적 식별 체계가 민간인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기업의 선악을 가르는 일이 아니다. 방산과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이 하나의 전장 구조로 결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중동 전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클라우드 인프라의 취약성을 현실로 드러냈다. AWS 중동 데이터센터 피격은 데이터센터조차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전쟁은 항만과 유전, 공항만 겨누지 않는다. 데이터센터와 위성망, 반도체 공급망까지 겨눈다. 지도, AI, 클라우드, 반도체는 전쟁의 바깥에 있는 산업이 아니다. 이미 전쟁의 안으로 들어온 인프라다.
이 지점에서 디지털 지도 전쟁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도 논쟁을 구글 지도가 편하냐, 국내 지도가 낫냐는 서비스 경쟁으로 보는 시각은 현실을 한참 밑도는 인식이다. 지도에 인공지능이 붙고 클라우드가 붙는 순간, 지도는 국가의 감각기관이 된다. 어떤 도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느 지역이 병목인지, 어디에 자율주행과 드론, 로봇과 물류망을 얹을 수 있는지, 모두 지도 위에서 계산된다. 지도를 가진 자가 지도자다. 누가 더 정밀한 공간정보를 확보하고, 그 위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결합하며, 더 강한 AI 학습 구조를 갖추느냐가 국가 경쟁력과 안보에 직결되는 시대다.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다시 봐야 할 것은 우리의 고정밀 디지털 지도다. 한국의 1:5000 고정밀 지도는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다. 도로와 건물, 시설과 행정, 산업과 생활의 흐름이 겹쳐진 국가 운영의 기준면이다. 물류와 모빌리티, 디지털트윈과 자율주행, 재난 대응과 도시 운영의 기반이 모두 여기에 놓여 있다. 안보의 눈이면서 동시에 산업의 밥줄이다.
특히 AI 시대에는 데이터의 비가역성을 더 무겁게 봐야 한다. 영토는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외부로 넘어간 고정밀 지도와 그 위에서 학습된 AI의 판단 구조는 회수가 불가능하다. 다른 데이터와 결합되고, AI 학습 재료가 되며, 새로운 서비스와 의사결정 체계로 고착된다. 이것이 디지털 주권의 핵심이다.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중국도 방식은 달라도 핵심 공간정보를 아무 기준 없이 외부에 넘기지 않는다. 개방하되 기준을 쥐고, 협력하되 통제권을 지킨다.
그런데 이번 구글 지도 반출 결정 과정에서 그 기준이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필자는 국토지리정보원과 국토교통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돌아온 답변은 두 가지였다. 비공개, 그리고 부존재다. 국방부·국가정보원·행정안전부 등 안보 관계기관과의 협의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 서버 저장·해외 접근 방식이 법적으로 국외반출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검토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의 정책 검토, 장관 보고, 법령 적용 검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의 내용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비공개 처리됐다. 그런데 정작 국방부·국정원과의 협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보를 이유로 감추면서, 안보 기관과는 협의하지 않은 셈이다. 결정 구조도 석연치 않다. 원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과장 결재로 처리됐고, 민간위원이 사퇴한 지 사흘 만에 신규 위원이 위촉됐으며, 짧은 회의 직후 기자회견 형식으로 조건부 허가가 발표됐다. 대통령실, 국무총리실, 국토교통부까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정리됐다.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는 국가안보 우려가 있는 측량성과의 국외반출 시 국방부장관·행정안전부장관·국가정보원장 등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체를 구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법은 있었다. 절차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의 정보공개청구에 돌아온 답은 부존재였다.
구글 지도가 불편하니 고정밀 지도를 넘겨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놓친 것이다. 길찾기 서비스는 도로 네트워크 데이터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핵심은 길을 찾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국가가 수십 년간 구축한 고정밀 공간정보가 해외 플랫폼의 서버와 AI 학습 체계로 들어갈 때 어떤 구조적 종속이 생기느냐다. 오늘의 구글 지도는 단순한 내비게이션이 아니다. 검색, 광고, 모바일 운영체제, 클라우드, AI와 연결된 거대한 플랫폼 생태계의 일부다. 그런 플랫폼에 한국의 고정밀 디지털 지도를 넘기는 것은 관광객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간정보 주권과 미래 산업의 좌표계를 외부 기준에 맡기는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선례다. 철저한 고민 없이 열어둔 문은 다음 요구자에게 거부의 근거를 지운다. 중국 플랫폼이, 또 다른 국가의 기업이 같은 요구를 들고 올 때 "구글에는 줬으면서 왜 우리는 안 되느냐"는 논리를 막을 수단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미 열린 문에 다시 기준을 세우고, 다음 문이 같은 방식으로 열리지 않도록 법이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인현 대표는 한국공간정보통신(KSIC) 대표·공학박사·디지털지도전쟁 저자이다. 1993년부터 GIS 연구를 시작해 33년간 공간정보 분야에 종사했으며, 도로명주소 사업 등을 통해 전국 중앙행정부처, 광역지자체와 206개 지방자치단체에 GIS 솔루션을 공급한 경험이 있다. 구글 지도 반출 결정과 관련해 국토지리정보원·국토교통부에 정보공개청구를 직접 수행했으며 관련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
고객님만을 위한 맞춤 차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