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회계사]② “최소 기준이 상한선 됐다”… 표준감사시간이 부른 ‘저가 경쟁’
||2026.04.01
||2026.04.01
이 기사는 2026년 4월 1일 오후 2시 5분 조선비즈 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자본주의 파수꾼’이자 ‘전문직의 꽃’으로 불리던 회계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감사 시즌마다 반복되는 과로 구조가 고착화된 결과다. 이른바 ‘타임이팅(Time-eating)’으로 불리는 근무 시간 축소 관행도 만연해 있다. 전·현직 회계업계 종사자 200여 명의 증언과 설문을 통해 현장의 실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전·현직 회계법인 종사자들은 저가 수주와 이에 따른 격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배경으로 ‘표준감사시간’ 제도를 지목했다. 표준감사시간은 기업 회계를 감사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정해 놓은 최소한의 감사 시간을 말한다.
문제는 이 최소 기준이 감사 계약 입찰 과정에서 사실상 ‘상한선’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필요한 감사 시간보다 적게 계약이 이뤄지면서 보수는 줄고 업무 부담은 커지는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회계사들은 지적했다.
◇시간당 감사 보수 20% 넘게 줄기도
1일 조선비즈가 시가총액 상위 15개 상장사의 2025년 감사보수를 분석한 결과, 7개 기업이 전년 대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3개 기업은 동일했고, 5개 기업은 늘었다.
셀트리온의 감사 보수는 2024년 29억2000만원에서 2025년 23억원으로 약 21% 줄었다. 삼성물산도 같은 기간 42억5400만원에서 39억7000만원으로 약 6% 감소했다.
감사 보수는 보통 ‘감사 투입 시간 × 시간당 단가’로 결정된다. 최근에는 감사 투입 시간이 줄면서 보수 감소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상장사의 평균 감사 투입 시간은 2022년 2458시간에서 지난해 2348시간으로 4년 연속 감소했다.
시간당 단가도 뒷걸음질 치는 경우가 많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감사보수로 11억7300만원을 냈다. 감사시간은 1만4533시간으로 시간당 단가는 8만712원이다. 2024년(10만2129원)보다 20.97%(2만1417원) 줄었다.
SK스퀘어도 시간당 단가가 2024년 11만1956원에서 지난해 9만9378원으로 11.24%(1만2578원) 감소했다.
◇최소 기준이 상한선으로
회계사들은 이 같은 흐름의 배경으로 표준감사시간제를 지목한다. 이 제도는 2016년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도입됐다. 기업의 규모와 계열사 수, 업종 등을 토대로 최소한 감사해야 할 시간을 정하는 것이 골자다.
표준감사시간은 심의위원회에서 3년마다 조정하는데, 최근 기업 부담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기준을 낮춰줬다. 여기에 더해 내부 회계와 재무제표를 동시에 감사하거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경우 기준보다 더 줄일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표준감사시간이 낮아지면서 현실적으로 감사에 필요한 시간과 괴리가 커졌다는 점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 임원은 “일반적으로 실제 수행 감사 시간은 표준감사시간을 크게 웃돈다”며 “감사 대상 기업에 추가 보수를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을 감사 계약서에 넣기도 하지만 을(乙) 입장인 회계법인이 실제로 요청하긴 어렵다”고 했다.
표준감사시간은 어디까지나 최소 기준이지만, 기업과의 계약을 따내야 하는 회계법인 입장에선 표준감사시간 이상을 요구하기 어렵다. 회계사 A씨는 “영업 때문에 실제로 필요한 감사 시간보다 적게 투입할 수 있는 것처럼 계약이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지정 수임에서 회계법인 경쟁 입찰해 감사 계약을 따내는 자유 수임으로 바뀔 때 이런 현실이 잘 드러난다.
기아는 2024년까지 삼정회계법인의 지정 감사를 받다가, 2025년 자유 수임으로 전환되며 한영회계법인을 선임했다. 감사보수와 감사시간은 2024년 25억9000만원, 2만3378시간에서 2025년 18억5000만원, 2만34시간으로 줄었다. 감사보수는 약 28.6%, 감사시간은 약 14.3% 감소했다.
같은 회계법인이 기업의 감사를 연달아 맡을 때 감사보수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속 감사로 노하우가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당국 “관리 강화”… 현장선 회의론
저가 수임으로 실제 필요한 감사 시간을 밑도는 계약을 따내면 부담은 현장으로 전가된다. 회계법인들은 인력을 줄이거나 저연차 인력 비중을 높여 비용을 맞추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B씨는 “보수가 줄어든 만큼 비용을 낮추려다 보니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량이 늘어나는 구조가 됐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근무시간보다 적게 근무시간을 기록하는 ‘타임이팅(Time-eating)’ 관행도 당연시 된다. 계약된 감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근로 시간을 축소 기록하는 것이다.
회계사 C씨는 “근무 시간을 사실대로 기록하면 감사보수가 불어나니 계약을 따온 윗선에선 줄여서 기록하라고 압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상 저가 수임→인력 축소→업무 과중→근무시간 축소 기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금융위원회는 회계법인 간 경쟁으로 감사시간이 줄어드는 문제와 관련해 관리·감독 강화 방침을 밝혔다. 다만 기업별 상황이 달라 투입시간만으로 부실 감사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도 간담회를 통해 현장 애로를 점검하고 제도 개선을 건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한 대형 회계법인에서 3개월 사이 30대 회계사 2명이 잇따라 숨지자 뒤늦게 대책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한 회계사는 “(회계법인의) 출혈 경쟁 문제가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사람이 죽어야 움직이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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