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순혈주의 마침표… 황상연 체제 속 ‘뉴 한미’ 개막
||2026.03.31
||2026.03.31
한미약품이 창립 53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대대적인 체질 전환에 나섰다. 내부 인사를 중심으로 유지해온 ‘순혈주의’ 경영 체제를 공식적으로 종료하고, 자본과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경영 모델을 도입하는 신호탄이라는 평가다.
한미약품은 31일 송파구에 위치한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대표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번 인사는 단순한 최고경영자 교체를 넘어 지배구조와 경영 전략 전반을 재편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주총회 직후 황성연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한미약품을 믿고 있는 환우분들을 위해 가장 좋은 약을 좋은 가격에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다”며 “고객과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충실하게 경영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미약품은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 시절부터 이어진 내부 인사 중심의 경영 구조를 유지해왔다. 연구개발(R&D) 중심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력과 자본 전략 측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외부 인사를 대표로 영입한 것은 기존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개방적이고 전략 중심적인 기업으로 변모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황상연 대표는 LG화학 연구원,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 종근당홀딩스 대표 등을 거치며 산업과 자본시장 경험을 모두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연구개발 중심 기업’에서 ‘투자·전략 중심 기업’으로의 진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히 신약 개발 역량에 의존하는 구조를 넘어 자본 효율성과 기업 가치 극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경영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이사회 구성 역시 큰 폭으로 변화한다. 기존 내부 인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외부 인사와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이사회 성격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구체적으로 기존 이사회는 내부 출신 사내이사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이번 재편을 통해 투자 전문가인 황상연 대표와 연구개발 전문가가 함께 축을 이루는 구조로 바뀐다. 형식적으로는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4명, 기타비상무이사 2명으로 기존 틀을 유지하지만, 핵심 인물 교체로 인해 의사결정 구조는 실질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인적 구성 조정이 아니라 지배구조 전반의 재편을 의미한다. 기존 한미약품이 연구개발 중심의 단일 축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자본 전략과 기술 전략이 결합된 이중 축 구조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이번 변화가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중장기 전략과도 연결돼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신 회장은 약 30%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과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해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관철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로 인해 한미약품은 특정 주주가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주도하기보다, 여러 이해관계가 균형을 이루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측 역시 견제력을 유지하고 있어 이사회 내 권력 구도는 여전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구조적 특성은 황상연 체제의 가장 큰 과제로 지목된다. 새 대표는 단순한 경영 수행을 넘어 대주주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전략적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황 대표의 역할을 ‘전문경영인’에 그치지 않고 ‘전략 설계자’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지배구조 안정화와 자본 전략 수립, 기업 가치 제고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가 부여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체제 변화는 향후 지분 구조 재편이나 투자 회수 전략과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최대주주 측이 지분 매각을 시도했지만, 경영권 확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거래가 무산된 사례가 있었던 만큼 이사회 구성 변화가 향후 거래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한미약품의 핵심 경쟁력인 연구개발 전략은 이번 체제 변화 속에서도 중요한 축으로 유지될 전망이다. 최근 회사는 비만·대사, 항암, 희귀질환을 중심으로 R&D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성장 동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비만 치료제 분야에서는 ‘비만 전주기 전략’을 통해 초기 과체중 단계부터 고도비만, 체중 유지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상업화와 차세대 후보물질 개발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글로벌 시장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항암과 희귀질환 분야에서도 다수의 파이프라인이 임상 단계에 진입하며,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출 중심 전략을 넘어, 자체 상업화와 가치 극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외부 대표 체제 도입에 따른 내부 불확실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에서는 제약 산업 현장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외부 인사가 R&D 중심 기업을 이끄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이사회 내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과 대주주 간 갈등 재발 가능성 역시 잠재 리스크로 지목된다. 실제로 과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주가 변동성이 확대된 사례가 있었던 만큼, 지배구조 안정 여부가 향후 기업 가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황 대표는 “일각에서 대주주의 의약품 원료 감축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제약 원료는 국가가 정한 일정수준 기준을 통과해야만 사용 가능한 영역에 있기 때문에 적법한 절차 아래 경제성 논리를 따질 예정이다”며 “대주주의 입김은 분명 존재할 수 있으나, 법적 상식과 원칙에 충실하게 임하며 선대 회장님의 철학을 지켜 나아가는 전문경영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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