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 탈출’ 시험대… SK하이닉스 미국행에 기대·불안 교차
||2026.03.31
||2026.03.31
SK하이닉스의 미국 증시 상장 검토를 두고 시장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핵심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기대와 함께 기존 주주 가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3월 24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ADR 상장을 위한 등록서류를 비공개로 제출했다. 목표는 연내 상장이다. 다만 공모 규모와 방식 일정 등 세부 조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ADR은 국내 주식을 미국 은행에 맡기고, 이를 담보로 미국 시장에서 발행하는 대체증권이다. ADR을 활용하면 미국 투자자는 한국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도 달러로 해당 증권을 사고팔 수 있다. 기존 주식으로의 전환도 가능하다. 다만 ADR은 기존 주식과 가격 괴리가 발생할 수 있고 환율 변동의 영향도 받는다.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이번 ADR 추진을 단순한 자금 조달 목적을 넘어 기업 가치 재평가를 겨냥한 전략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사실상 독보적 지위를 확보하며 AI 반도체 생태계 핵심 기업으로 부상했지만, 국내 증시에서는 여전히 메모리 업황 사이클에 따라 평가받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AI 밸류체인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있는 점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일각에서는 이번 상장 검토 시점에 주목한다. HBM 수요 급증으로 실적과 시장 지위가 동시에 정점 구간에 진입한 상황에서 상장을 추진할 경우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향후 메모리 업황이 꺾일 경우 같은 전략을 추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타이밍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도 1997년 ADR 형태로 미국 증시에 입성했다. 이후 글로벌 반도체 호황 속에서 해외 자본을 유치하며 기업 가치를 끌어올렸다. 다만 파운드리 중심의 고객 기반을 갖춘 TSMC와 달리 메모리 중심 사업 구조를 가진 SK하이닉스는 업황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동일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기존 주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상장 방식이 자사주 신규 매입이 아닌 신주 발행이라는 점 때문이다. 당초 SK하이닉스는 자사주의 2.4%로 ADR 상장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자사주 소각 의무를 회피한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달 9일 약 12조24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이를 두고 일부 주주들은 “주주 이익 보호라는 개정 상법의 취지에 따라 신주 발행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SK하이닉스가 현금 여력이 충분한 상황에서 증자가 주주 보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역시 “충분한 현금을 보유한 상황에서 신주 발행을 통한 지분 희석은 주주충실의무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약 190조원의 연구개발 투자를 집행하더라도 670조원 규모의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기준 약 35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단기적인 자금 부족 우려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미국 상장이 현실화될 경우 기대 효과도 분명하다. 글로벌 기관 투자자 유입과 함께 AI 인프라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이 부각되며 멀티플(주가수익비율) 상승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다. 국내 증시는 지정학 리스크와 지배구조 이슈, 산업 분류의 보수성 등으로 기술 기업에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이 적용돼 왔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 검토는 ‘AI 인프라’라는 기회와 ‘지분 희석 및 규제 리스크’가 맞물린 선택이다”라며 “이번 상장 검토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SK하이닉스가 ‘메모리 업체’에서 ‘AI 인프라 기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상이 기자
differenc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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