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깁스엔 ‘응원’ 터보퀀트로 ‘비수’…구글의 화전양면술
||2026.03.30
||2026.03.30
글로벌 인공지능(AI) 생태계에 영원한 우군은 없다는 사실이 다시금 입증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구글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한 사이, 구글이 최근 메모리 수요 둔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신기술을 공개하면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이 직접 서명한 깁스 사진을 25일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최 회장은 출장 때마다 빨리 회복하라며 사인해 준 친구들 덕분에 깁스와 정이 들었다는 소회를 밝히며 이들과 친분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뒤로 구글은 메모리 업계의 성장 공식을 흔드는 ‘비수’를 꺼내 들었다. AI 모델 운영에 필요한 메모리 사용량을 최대 6배까지 줄일 수 있는 신기술 ‘터보퀀트(TurboQuant)’를 공개한 것이다.
터보퀀트는 소프트웨어 최적화만으로 대형 언어모델의 메모리 병목 현상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이다. 동일한 메모리로 6배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는 소식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는 불과 1개월 전의 모습과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최 회장과 피차이 CEO는 2월 미국 새너제이 구글 캠퍼스에서 만나 “AI 데이터센터 구축의 핵심 병목이 메모리 확보에 있다”며 “TPU 설계부터 SK하이닉스의 HBM을 심겠다”고 HBM 장기 수급 안정화를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구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메모리 수요 억제 기술을 내세웠다.
업계에서는 이를 구글의 ‘화전양면(和戰兩面)’ 전략으로 풀이한다. 단기적으로는 HBM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한국 기업과 협력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하드웨어 의존도를 낮춰 비용 구조를 바꾸려는 소프트웨어 효율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평가다.
터보퀀트 기술과 관련한 우려가 반영되면서 26일 삼성전자는 4.71%, SK하이닉스는 6.23% 급락하며 메모리 반도체 주가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27일에도 삼성전자는 0.22% 내린 17만9700원에 거래를 마쳤고, SK하이닉스는 1.18% 떨어진 92만2000원을 기록했다. 빅테크의 설계 역량이 메모리 업체의 실적에 빨간불을 켤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에 반영된 결과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기술 효율 개선이 오히려 AI 전체 수요를 키우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용이 낮아질수록 AI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장기적으로는 메모리 수요를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AI 모델의 효율성과 성능이 향상될수록 역설적으로 AI 총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짚었다. 즉 효율 개선이 비용 절감과 사용량 증가, 재투자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글의 행보는 파트너십 유지를 넘어 비즈니스 주도권을 자사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두겠다는 냉정한 계산을 확인시켜 준다. 업계 관계자는 “터보퀀트를 계기로 AI 기술이 더욱 확산하고 발전해 전체 메모리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면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하드웨어 공급을 넘어 소프트웨어 혁신에 대응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력 확보가 과제로 남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고객님만을 위한 맞춤 차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