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콜 확산 우려에 멈췄나… 벤츠코리아, 韓 보상 공백 이유
||2026.03.29
||2026.03.29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전기차 배터리 화재 대응을 두고 비판을 받고 있다. 화재 피해 아파트 주민에게는 ‘도의적 책임’을 내세워 보상에 나섰지만, 정작 EQE·EQS 차주에 대한 대책은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글로벌 리콜 확산 가능성을 고려한 소극적 대응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2024년 8월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판매한 EQE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해당 사고로 전손 피해 차량은 87대, 부분 파손 차량까지 포함하면 783대에 달한다. 주차장 설비와 배관 등 인프라 피해도 발생했다. 단일 사고로는 이례적인 규모다.
벤츠 코리아는 당시 입주민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약 60억원을 지원하고 자사 차량을 1년 이상 무상 대여하는 조치를 내놨다. 그러나 차주와의 형평성 논란은 피하지 못했다. 화재가 발생한 EQE와 EQS 차주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이들에 대한 별도의 보상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피해는 차량에서 시작됐지만 보상은 제3자에 집중된 구조다.
논란은 조사 과정에서 더 확대됐다. 벤츠 코리아는 EQE와 EQS에 시장 점유율 1위 배터리 업체인 CATL 셀이 탑재됐다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점유율과 인지도가 낮은 중국의 파라시스 배터리 셀이 적용된 사실이 확인됐다. 화재 이후 드러난 사양 차이는 차주들의 반발을 키웠다.
차주들은 이를 소비자 기만 및 불공정 거래 문제로 보고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전기차 구매 결정에 핵심적인 배터리 정보를 다르게 고지했다는 주장이다. 다만 현재까지 법원의 판단은 나오지 않았다.
사고 이후 대응을 둘러싼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사고 발생 이후 2년여가 지났지만 EQE와 EQS 차주를 대상으로 한 보상이나 조치는 여전히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차량 결함 논란의 직접 당사자인 차주들만 대응에서 제외된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현재까지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차주 대상 배터리 교환 등 리콜은 계획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에서 선제적으로 리콜이나 보상을 진행할 경우 동일 차종이 판매된 국가로 조치가 확산될 수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확인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일괄적인 조치를 취할 경우 비용 부담과 고객 불편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파라시스 배터리 셀이 탑재된 모델이 판매된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 등 57개국에서는 안전 문제를 이유로 리콜이 진행됐다. 당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배터리 셀 내부 단락 시 화재 위험이 증가할 수 있으며, 생산 공정 편차로 일부 셀의 내구성이 저하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벤츠 코리아는 이에 대해 “해외 리콜 대상 배터리 셀은 국내 판매 모델과 용량, 규격, 종류가 달라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기준 해당 배터리가 적용된 차량은 국내에 약 3000대 판매됐지만 화재 사례는 1건에 불과하다”며 “이를 차량 전체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동일 공급망 리스크가 해외에서는 리콜로 이어진 반면 국내에서는 별다른 조치가 없다는 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벤츠 코리아가 국내 조치가 글로벌 리콜로 확대될 수 있다고 언급한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글로벌 리스크와 비용 부담이 대응을 제약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제품 책임보다 리콜 확산에 따른 비용과 파장을 우선 고려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벤츠 코리아는 화재 이후 전 차종 무상 점검을 실시하며 선제 대응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대부분 완성차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시행한 조치로, 개별 기업의 책임 있는 대응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결국 피해는 차주에게 전가된 측면이 있다. 화재 이후 EQE와 EQS 중고차 가격은 급락했고, 매각 손실은 소비자가 부담하고 있다. 보상은 제3자에 집중되고 제품 책임은 사실상 공백 상태라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현재와 같은 대응이 장기적으로 더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한 관계자는 “차주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브랜드 신뢰도 하락은 물론 향후 전기차 판매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은 단순 화재 사고를 넘어 제품 책임보다 글로벌 리스크 관리가 우선되는 구조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브랜드 신뢰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논란은 경영진 인사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마티아스 바이틀 벤츠 코리아 사장의 인사를 둘러싸고도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이틀 사장이 본사로 승진 이동하는 것이 화재 사고에 대한 조사 및 보상 지연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벤츠 코리아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통상 3년 임기를 기준으로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신임 대표인 쉬린 에미라는 공식 임기 시작 전 한국 시장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향후 문제 대응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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