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주도 9개 은행 참여… 블록체인 결제 첫발 [예금토큰 도입 ①]
||2026.03.26
||2026.03.26
돈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화폐의 한 형태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은행권도 뒤질세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은행과 9개 시중은행이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화폐인 ‘예금토큰’ 상용화 작업을 시작했다. 통화 주권과 혁신 사이에서 예금토큰의 역할과 한계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직장인 A씨는 거래 은행 앱에서 디지털 지갑을 개설한 뒤 가지고 있던 예금 10만원을 동일한 금액의 예금토큰으로 전환했다. 바꾼 예금토큰은 기존 간편결제처럼 배달앱에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QR코드를 통해 마트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한국은행이 은행권과 손잡고 디지털화폐 기반 예금 토큰 상용화에 속도를 낸다. 단순 결제를 넘어 국고보조금 집행에 활용하는 등 실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미 간편결제 인프라가 자리 잡은 국내 환경에서 이용자 체감 효과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과제다.
26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최근 예금토큰 상용화를 위한 ‘프로젝트 한강 2단계’에 본격 착수했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국은행이 은행들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거래 테스트를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한은은 지난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1단계 기술 검증을 진행했다. 2단계에서는 예금토큰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올 상반기 국고금 집행 시범사업을 지원하고, 하반기에는 참여 은행을 대상으로 사용처와 신규 기능을 넓힌 후속 실거래를 추진한다. 예금토큰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규제특례가 적용된 만큼, 한은이 이를 실거래 환경에서 검증하고 제도적·기술적 보완을 거쳐 인프라 상용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번 2단계에서는 기존 7개 은행에 더해 총 9개 은행이 참가한다. 참여 은행은 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농협·부산은행에 경남은행과 iM뱅크가 새롭게 합류했다.
은행들은 한은이 발행한 블록체인 기반 기관용 디지털화폐를 예금토큰으로 발행한다.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토큰화한 것으로, 블록체인상에서 은행에 맡긴 예금을 1대 1로 치환해 그 자체가 화폐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디지털 지급결제 수단이다.
예금토큰은 지갑 간 직접 이전(P2P)이 가능해 중간 중개자를 줄임으로써 결제 처리 속도를 높이고 수수료도 절감할 수 있다. 기존 은행 간 이체가 중개은행 등 별도 금융기관을 거쳐야 하는 반면, 예금토큰을 활용한 P2P 송금은 이러한 중개 과정을 줄일 수 있어서다.
김동섭 한은 디지털화폐기획팀장은 “예금토큰은 은행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인 만큼 한국은행이 기본 틀만 마련하면 포인트나 혜택 등 다양한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설계할 영역”이라고 밝혔다.
2단계에서는 상용화를 염두에 둔 만큼 사용처도 확대된다. 유통, 배달, 보험, 카드 등 생활 밀착형 결제 영역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전망이다. 예를 들어 신한은행은 자체 뱅킹 앱에서 예금을 예금토큰으로 전환해 배달앱 땡겨요, 편의점, 신한EZ손해보험 등에서 결제할 수 있도록 한다.
김동섭 팀장은 “예금토큰 서비스의 편의성을 한층 개선할 계획”이라며 “은행 간 계좌 이체가 가능한 것처럼 예금토큰 역시 발행 은행과 관계없이 은행간 자유로운 이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용자는 프로젝트 한강의 참가 은행 앱에서 전자지갑을 개설한 뒤 본인 소유 예금을 예금 토큰으로 전환해 사용하면 된다. 전환된 예금토큰은 지정된 온·오프라인 사용처에서 물품과 서비스 결제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예금토큰 발행으로 이용자가 체감할 변화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이미 간편결제 서비스가 자리 잡은 상황에서 속도나 편의성 측면에서의 차별성이 크지 않아서다. 실제 1단계 실거래 테스트에서도 8만여명이 참여했지만 1인당 사용 횟수는 1~2회에 그쳤다.
은행권 관계자는 “국내처럼 결제 인프라가 이미 잘 구축된 환경에서는 예금토큰이 소비자 편의성 측면에서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기는 어렵다”며 “결국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선 경제적 이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고금 집행과 같은 영역에서는 관리 효율성과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한은은 올해 상반기 기관용 디지털화폐와 예금토큰을 활용한 국고 보조금 지급 사업을 추진한다. 첫 사례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전기차 충전기 설치 보조금 사업에 적용한다. 사업자에 보조금을 예금토큰으로 부여해 충전기 판매점과 한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예금토큰은 스마트계약을 통해 사용처와 시간 등을 사전에 설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보조금 목적 이외에 사용을 차단함으로써 부정 수급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거래 내역이 자동으로 기록돼 국고 보조금 지급 과정을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행정비용도 줄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예금토큰은 기술적으로 결제 모듈에 적용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실제 확산 여부는 결국 사용자가 얼마나 쉽게 이해하고 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기존 금융 서비스처럼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UX)을 구현하는 게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정서영 기자
insyo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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