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0% 이자 준다더니”… 깨알같은 고금리 ‘우대 조건’
||2026.03.25
||2026.03.25
#‘연 10% 적금’이라는 문구에 이끌려 가입 버튼을 눌렀던 직장인 윤모(34)씨는 만기 예상 이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조건을 하나라도 놓치면 금리가 크게 낮아지고, 월 납입 한도도 제한돼 실제 손에 쥐는 이자는 광고에 비해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은행권이 두 자릿수 금리를 내세운 수신 상품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최고 금리’와 ‘실제 수익’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잡한 우대금리 조건과 낮은 납입 한도가 맞물리면서 체감 금리는 광고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들은 최소 7%에서 높게는 10% 넘는 고금리 예·적금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우리은행이 출시한 ‘빙고적금’은 최고 연 10% 금리를 내세워 주목을 받았다. 신한은행도 지난 달 ‘운동화 적금’을 통해 최대 연 7.5% 금리를 제시했고, 전북은행 ‘슈퍼씨드 적금’은 최고 연 13% 금리를 내걸었다. 숫자만 보면 과거 고금리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구조는 전혀 다르다. 이들 상품은 대부분 기본금리에 각종 조건을 내건 우대금리를 더해 ‘최고 금리’를 만든다.
우리은행 빙고적금의 기본금리는 연 2.5% 수준에 그치고, 나머지 7.5%포인트는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받을 수 있다. 빙고판 9칸을 모두 채워야 최고 금리가 적용되는 구조다. 빙고 미션을 보면 해당 적금 가입, 생일, 생활 요금 납부 등 비교적 쉬운 미션이 있는가 하면, 다른 우리은행 상품에 가입해야 하는 부담도 적지 않다.
예컨대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주택청약종합저축 등에 신규 가입해야 하거나 주택청약 상품 입금 등의 전제가 붙는다. 여기에 3개월 이상 우리카드 결제나 삼성월렛머니 충전 등을 해야 하는 조건도 있다. 마이데이터나 오픈뱅킹 등에도 가입해야 한다. 여기에 상품·서비스 마케팅 동의(전화·SMS 등)를 유지해야 하는 조건도 따라온다.
신한은행의 운동화 적금 역시 비슷하다. 플랫폼 가입, 첫 거래 여부, 카드 이용 실적 등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우대금리가 붙는다. 우선 신한 쏠뱅크 내 ‘신한 20+뛰어요’ 또는 ‘신한 50+걸어요’ 플랫폼 가입(1.0%)이 필요하다. 특히 신한카드 최초 신규 고객이거나 탈회 후 3개월 경과 고객이거나 적금 가입 후 신규 가입을 통해 신한은행 입출금통장을 결제계좌로 실적이 3개월이 이상(3.0%)이어야 한다. 단순히 가입만으로 고금리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고객의 활동을 끌어내는 ‘행동 기반 금리’ 설계다.
일부 은행은 아예 복불복 형태의 ‘확률형 금리’ 구조까지 도입했다. 전북은행 슈퍼씨드 적금은 매달 적금을 정상 납입하면 ‘씨드’가 1개씩 지급된다. 이 씨드를 통해 별도의 이벤트 페이지에서 ‘슈퍼씨드’ 당첨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당월 생성된 씨드 500개당 1개꼴로 슈퍼씨드가 지급되는데, 만약 한 달 동안 5만 개의 씨드가 생성될 경우 100개만 당첨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당첨된 경우에만 최고 금리가 적용되며, 만기까지 유지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최고 연 10% 금리는 모든 가입자가 받을 수 있는 금리가 아니라, 추첨을 통해 일부 고객에게만 적용되는 셈이다.
우리은행의 ‘두근두근 행운 적금’도 유사하게 카드 추첨을 통해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이 상품은 기본금리 연 2.5%에 각종 추첨을 통해 우대금리를 더해 최대 연 12.5%까지 받을 수 있다. 다만 우대금리는 조건 충족이 아닌 ‘당첨’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가입자는 매월 ‘행운카드’ 추첨에 참여하는데, 카드 1장당 연 2.0%포인트의 금리가 추가된다. 문제는 당첨 확률이다. 첫 번째 카드 당첨 확률은 약 42.5%지만, 카드 수가 늘어날수록 확률은 급격히 낮아진다. 2장(4.0%포인트)은 약 8.1%, 3장(6.0%포인트)은 3.37%, 4장(8.0%포인트)은 0.28% 수준이다. 최대 우대금리인 10.0%포인트를 모두 받기 위한 5회 당첨 확률은 0.009%에 불과하다. 혹 중도해지 시에는 해당 금리가 모두 사라진다.
고금리 미션을 모두 통과했다고 해서 목돈을 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상품이 월 납입 한도를 30만~50만원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어 최고 금리를 적용받더라도 실제 이자 금액은 크지 않다. 여기에 우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끼 상품’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고객들의 관심은 이어지고 있다. 금리 자체가 낮은 환경에서 ‘두 자릿수 금리’라는 상징성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화제성을 확보하고 신규 고객을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상품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고객 유치 경쟁이 고금리 확대나 서비스 개선이 아닌, 고객의 충성도를 시험하는 수준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고금리를 미끼로, 고객을 번거롭게 만들어 결국 해당 플랫폼에 묶어 두려는 의도만 남았다는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대조건을 복잡하게 설계해 앱 로그인, 자동이체, 타 상품 가입 등 고객의 서비스 이용 빈도를 높이는 구조를 만들어 데이터 확보와 교차판매로 이어지게 하는 전략”이라며 “은행은 금리 경쟁보다도 고객 편의성과 디지털 경험 품질을 개선하는 ‘이용 효율형 상품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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