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⑫ 시황제의 탄생, 시진핑의 과욕인가 공산당의 선택인가
||2026.03.24
||2026.03.24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 시기 ‘1인 지배 통치 구조’가 초래한 국가적 파국을 경험하고도, 다시 1인 지배체제로 회귀하고 있다. 이 권력 구조의 변화는 중국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의 구조적 상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흐름이 중국을 치명적인 위기로 몰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의 ‘시황제의 탄생’은 개인적 권력욕의 산물일까, 아니면 체제 생존을 위한 중국 공산당 조직의 전략적 선택일까.
◇파국으로 폐지된 마오쩌둥의 ‘1인 지배체제’의 복귀
마오쩌둥의 절대권력 체제는 사회주의 중국 건국의 동력이자, 동시에 정치·경제적 혼란의 근원이기도 했다. 경제 강국을 목표로 한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는 극심한 폐해를 겪었고, 그 책임으로 마오쩌둥은 권력을 일부 내놓아야 했다. 이후 절대권력을 회복하기 위해 추진한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은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고, 10년 가까이 경제 활동을 마비시켰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체제가 얼마나 무모하고 폭력적인지를 중국 공산당은 처절하게 경험했다.
덩샤오핑은 이를 교훈 삼아 개인숭배와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다. 개혁·개방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권력을 엘리트 집단에 분산하고 제도화한 것이다. 국가 주요 직책에는 임기제(통상 5년 연임, 10년 상한)를 도입했고, 사전 후계자 그룹을 상무위원에 올려 검증하는 권력승계 규칙을 마련했다. 7~9인 규모의 국가 최고 지도자 그룹인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원칙적으로 합의에 따라 중대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또한 각 상무위원에게 주요 업무를 분업, 책임 영역의 권력 및 집행을 명확히 규정했다. 이는 파벌 간 합의와 견제를 통해 정치적 권력승계의 규칙을 만들고, 경제 발전에 유리한 정치적 예측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체제는 약 30년 동안 중국의 고도성장을 떠받치는 통치 틀이 됐다.
그러나 30년간 지속된 집단지도체제도 결국 비효율과 부패, 책임 소재의 불분명함으로 인해 통치의 한계에 직면한다. 상무위원들 사이의 감시와 통제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권한 영역에서 부패가 구조화됐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졌다. 실질적 지도력의 부재 속에서 급변하는 경제·외교 환경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더 심각한 건 이러한 문제가 공산당 체제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번졌다는 거다. 이런 혼란 속에서 선택된 인물이 바로 시진핑이다.
시진핑 주석 체제는 명확하게 ‘1인 중심 통치 구조’로 회귀하고 있다. 1인 중심의 권력 집중 문제를 단순히 시진핑의 과욕으로 ‘마오쩌둥 시기’로 후퇴하는 개념으로만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불안정한 통치 구조의 통합과 안정감을 주고 비효율의 통치에서 효율의 회복을 위한 공산당 지도부의 합의된 결과로 평가할 것인가.
필자는 이 현상을 시진핑 주석의 개인적 과욕으로 탄생한 ‘마오쩌둥으로의 회귀’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덩샤오핑(鄧小平) 체제 이후 중국이 당면한 정치,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고려한 결과의 산물일 수 있다. 집단지도체제의 통치 구조가 ‘G2(주요 2개국) 차이나’로 커진 중국을 감당하기엔 부적합한 구조로 판단했을 수 있다. 또한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필요한 신속하고 단일 대오의 일사불란한 통치 구조의 필요성을 인식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으로 중국 공산당이 전략적 선택으로 ‘1인 중심의 통치 구조’로 전환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문제는 권력의 집중이 초기의 사명을 망각하고 다시금 ‘마오쩌둥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은 살아 있는 생물’로서 시진핑 주석 개인과 주변 권력자들이 부귀영화를 위한 욕망이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아직 중국이 완전히 ‘마오쩌둥의 시대로 회귀했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결국 ‘시황제의 탄생’은 중국식 정치 발전의 아이러니를 상징한다.
◇덩샤오핑의 집단지도체제가 남긴 치명적 문제
첫째, 공산당 전반의 부패 확산과 감독의 취약성으로 인한 인민의 불만 고조다. 집단지도체제 아래 상무위원은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사실상 최고 권한을 행사했다. 이는 상무위원 간의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 작동하지 않는 문제를 초래했다. 결국 상무위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부패의 도화선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기 상무위원급 부패 사건 중 하나인 저우융캉(周永康)의 ‘중국 석유 카르텔 이권 사업’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 서기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특히 석유 사업에서 쌓은 경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석유방의 대부’가 됐다. 석유 이권과 공안 권력을 결합한 초대형 부패 네트워크를 형성해, 부패 규모가 1000억 위안(약 20조 원)에 달하는 부패의 최고 책임자가 됐다. 이미 여러 차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상무위원이라는 지위가 사실상 통제 불능의 상태를 낳았다는 분석이 많다.
이 같은 부패는 중앙, 지방,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산당 내부 곳곳에서 자행됐다. 부패의 연결고리를 따라 올라가면 결국 최정점에 상무위원급 권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부패 척결을 위한 조사와 처벌은 상무위원 간의 통제력 부재로 흐지부지됐다. 이런 악순환은 빈부격차 확대와 인민들의 불만 증폭으로 이어졌고, 경제 성장 둔화까지 겹치며 공산당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됐다. 이제 공산당 조직은 부패 문제를 강하게 통제할 수 있는 통치 구조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둘째, 상무위원 간 권력 분산이 낳은 의사결정의 비효율과 리더십 약화다. 정치국 상무위원회 합의제는 정책 선호가 다른 파벌 및 개인 사이의 타협을 기본적 전제로 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주석과 총서기의 역할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라 타협하고 조정하는 역할 정도로 권한이 축소됐다.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조속히 해결하기보다, 파벌 간 이해에 따라 타협하고 결정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중대한 개혁과 민감한 사안에서 타협의 실패로 인한 결정을 지연 혹은 폐기하는 경향이 발생했다. 또한 권력이 분산된 만큼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져, 정책 실패가 발행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집단 무책임 같은 문제가 나타났다. 중앙의 장기 전략이 여러 차례 실기 되거나 주요 정책 간 충돌 혹은 중복이 누적되는 비효율도 심화했다. 여기에 파벌 정치와 엘리트 카르텔, 정책 일관성과 집행력 부족 등이 더해지면서 공산당 생존과 직결되는 여러 문제가 수면으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시진핑 주석 정권 초기,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중국 공산당의 고육지책이 단순하게 개인 욕망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다.
[편집자 주]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삼성 중국 지역 전문가로 대륙을 돌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CJ(제일제당) 중국사무소 대표를 지냈으며,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했고, 현지에서 화장품 유통업체 카라카라를 창업하기도 했다. 2012~2017년에는 중국 50대 민영기업 신화련그룹의 투자수석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이춘우 특임교수의 칼럼은 3주에 한 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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