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기억할 것”…백악관에 등장한 콜럼버스 동상에 ‘역사 전쟁’ 불붙나
||2026.03.23
||2026.03.2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을 백악관 경내에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콜럼버스를 기리는 동상은 2020년 인종차별 반대 시위 당시 미 전역에서 대거 철거됐다.
22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오전 백악관 옆 업무용 건물인 아이젠하워 행정동 앞에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콜럼버스 동상이 설치됐다. 이를 두고 데이비스 잉글 백악관 대변인은 “백악관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영웅”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그가 영웅으로 기려지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상은 2020년 7월 4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리틀 이탈리아 인근에서 철거된 동상을 복원해 제작됐다. 이 동상은 앞서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설치됐으나, 2020년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 국면에서 시위대가 동상을 인근 항구 물속에 처박으면서 철거된 바 있다.
이후 볼티모어 지역 예술가인 틸그먼 헴슬리는 잠수부 팀을 조직해 파편을 수거, 그의 아들 윌 헴슬리가 동상의 복제품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젝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국립인문기금(NEH)에서 3만달러(약 4500만원)를 지원받아 진행됐으나, 작업 완료 이후에도 마땅한 재설치 지점을 찾지 못해 수년간 작업실에 보관된 바 있다.
동상을 백악관 부지에 설치하는 방안은 올해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 행사 준비 과정에서 본격 논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인 2020년에도 동상 철거 움직임을 ‘국가 기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기념물 복원 행정명령을 발동했으며 2024년 대선 과정에서도 콜럼버스의 날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콜럼버스의 행적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진보 진영에서는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 원주민 문명 파괴와 대량 학살, 식민 지배의 시대가 열렸다고 본다. 이들은 ’콜럼버스의 날‘로 지정된 10월 둘째 월요일을 ’원주민의 날’로 기려야 한다고 주장,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화로 피해를 본 원주민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자는 취지를 견지해 왔다.
반면 콜럼버스의 업적을 기려야 한다는 입장도 강력히 유지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계 미국인 단체들은 콜럼버스를 민족적 자긍심의 상징으로 간주, 콜럼버스 동상들이 과거 차별과 박해에 시달렸던 이민자들을 추모한다는 이유로 철거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현재 미 전역에는 약 149개의 콜럼버스 기념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대다수가 19~20세기 이탈리아계 단체들의 기부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움직임에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회는 환호하는 분위기다. 바질 루소 미국 주요 이탈리아계 미국인 단체 협의회 회장은 “이번 조치는 5~6년 전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 콜럼버스가 복귀하는 것”이라며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과 연방 부지 전반에 역사적 위인들의 조형물을 확대 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백악관 장미 정원에는 이미 벤저민 프랭클린과 알렉산더 해밀턴을 비롯해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등 미 건국 초기 인물들을 기리는 동상들이 설치됐으며, 250명의 위인을 기리는 ‘영웅의 정원(Garden of Heroes)’ 조성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학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백악관 역사협회 전 수석 역사가 에드워드 렝겔은 “백악관이 정치적 상징이 난무한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행정부는 백악관을 당파적 전쟁터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 싱크탱크 카토 연구소의 제프 미론 부소장은 “콜럼버스에 대한 관점은 백악관이 아닌 박물관, 다큐멘터리 제작자, 그리고 외부 전문 단체들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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