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계열사서 환골탈태… 에스티팜, 어떻게 핵심 자회사 되나
||2026.03.18
||2026.03.18
한때 동아쏘시오그룹 내부에서 ‘투자 부담이 큰 계열사’로 인식되던 에스티팜이 최근 그룹의 핵심 성장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리고핵산 기반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이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매출과 수주가 동시에 확대되고 있고, 그룹 인사 전략에서도 그 위상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스티팜은 오는 26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용훈 동아제약 경영지원실장 상무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최 후보자는 동아쏘시오홀딩스 경영지원실을 거쳐 동아제약 경영지원실장을 맡아온 인물로 그룹 핵심 경영지원 인력으로 꼽힌다.
그룹 주요 임원이 에스티팜 이사회에 합류하는 것은 최근 들어 두 번째 사례다. 2025년에는 동아쏘시오홀딩스 출신 김이환 경영기획실장이 에스티팜 CFO로 이동해 경영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 같은 인사 흐름은 단순한 임원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룹 내에서 검증된 경영지원 인력을 에스티팜 경영진에 배치한다는 것은 해당 회사가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할 핵심 사업회사로 격상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스티팜은 2010년 동아쏘시오그룹에 편입된 이후 오랜 기간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비용 부담으로 실적 변동성이 큰 계열사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사업 구조가 안정화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올리고핵산 CDMO 사업이 있다. 에스티팜은 RNA 기반 핵산치료제 원료를 생산하는 글로벌 CDMO 업체로,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와 siRNA 등 차세대 치료제 원료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다. 과거에는 임상용 소량 생산 비중이 높아 매출 변동성이 컸지만, 최근에는 상업화 단계 치료제 공급이 늘면서 안정적인 매출 구조로 바뀌고 있다.
실제 실적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에스티팜의 2025년 매출은 3316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1% 증가하며 처음으로 3000억원대에 진입했다. 영업이익은 552억원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회사 측은 올리고 CDMO 사업 호조가 외형 성장을 이끌었다고 설명한다.
올해 들어서는 수주 확대가 더욱 두드러진다. 에스티팜은 최근 유럽 제약사와 약 897억원 규모의 올리고핵산 치료제 원료의약품(API)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회사 역사상 올리고 원료 단일 계약 기준 최대 규모다. 해당 원료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상업화된 치료제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올해 1월에도 미국 바이오텍과 약 825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두 달 사이 체결된 계약 규모만 1700억원이 넘는다. 이는 최근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 같은 계약 증가에 힘입어 에스티팜의 올리고 수주잔고는 약 3560억원, 전체 수주잔고는 463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주 확대의 배경에는 글로벌 핵산 치료제 시장의 성장세가 있다. 안티센스·siRNA 등 올리고 기반 치료제는 희귀질환 중심에서 심혈관 질환, 대사질환 등 만성질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0개 이상의 올리고 치료제 파이프라인이 개발 중이며 관련 원료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리고 핵산 원료의약품 시장이 연평균 약 10% 성장해 2030년 약 7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에스티팜은 이러한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능력 확대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회사는 안산 반월캠퍼스에 제2 올리고 생산동을 구축하며 생산 능력을 크게 늘렸다. 이 시설은 임상 단계부터 상업 생산까지 전 주기 GMP 생산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확장된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의 주문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재편도 에스티팜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 바이오 의약품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논의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중국 CDMO 의존도를 낮추고 한국·유럽 업체로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제약사의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에스티팜이 이러한 공급망 재편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 측면에서도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성무제 대표는 2023년 에스티팜 부사장으로 합류한 뒤 2024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동아쏘시오그룹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겸직하게 됐다. 그룹 전체 연구개발 전략을 총괄하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이는 에스티팜이 단순한 계열사를 넘어 그룹 R&D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룹 내부에서는 에스티팜을 중심으로 계열사 간 협력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동아쏘시오그룹은 동아에스티, 동아제약 등 다양한 의약품 사업을 보유하고 있는데, 핵산치료제 생산 역량을 가진 에스티팜이 그룹 연구개발 역량과 결합하면 신약 개발부터 생산까지 수직 계열화가 가능해진다.
이 같은 변화는 에스티팜의 위상을 그룹 내에서 완전히 바꿔 놓고 있다. 과거에는 대규모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으로 인해 수익성이 낮아 ‘돈 먹는 계열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글로벌 핵산치료제 시장 확대와 맞물리며 안정적인 수주와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한 사업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에스티팜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제2 올리고동 가동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될 경우 매출이 4000억원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증권가 전망대로라면 에스티팜은 1년 만에 다시 매출 앞자리를 바꾸게 된다.
에스티팜의 변화는 단순한 실적 개선을 넘어 사업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핵산치료제 시장 성장, 글로벌 공급망 재편, 생산능력 확대라는 세 가지 흐름이 동시에 맞물리며 기업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리고 치료제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핵산 의약품 원료 생산 역량을 가진 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에스티팜은 선제적인 설비 투자와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CDMO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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