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과 연결해 전력을 사고파는 ‘V2G (Vehicle to Grid)’ 기술 실증이 제주에서 진행되면서 전기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전력 자산’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제주도에서 추진 중인 전기차 전력망 연계 V2G 실증 사업에는 예상보다 많은 고객이 몰리며 일부 대기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고객 대상 실증은 당초 35대 규모로 계획됐지만 참여 신청이 이어지면서 모집을 넘는 수요가 발생했다.
주철규 현대차 EV V2X 팀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아이오닉 9이나 기아 EV9 차주이면서 개인 주차장을 보유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운데도 신청자가 많았다”며 “현재 일부는 대기 상태”라고 밝혔다.
V2G는 전기차 배터리를 ‘바퀴 달린 에너지 저장장치’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력이 남을 때 전기차가 이를 충전하고, 전력 수요가 높은 시간에는 다시 전력망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차주는 전력 판매 수익을 얻고 전력망은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실증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분산에너지 제도가 있다. 정부는 2023년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제정해 다양한 분산 전원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을 마련했고, 2025년 11월 제주를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에 연결하는 V2G 같은 기술 실험이 가능해졌다.
일각에서는 관련 제도가 정비될 경우 전기차 차주가 충전요금을 거의 내지 않고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서비스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력이 남는 시간대에 저렴하게 충전한 뒤 수요가 높은 시간에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국내 전력 시장 구조에서는 수익 규모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전력 소매 판매와 송배전 분야에서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제한돼 있어 V2G나 수요반응 DR 사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대차 내부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현행 제도 기준으로 전기차 차주가 V2G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월 1만~2만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전기가 저렴한 시간과 비싼 시간의 가격 차이가 해외에 비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V2G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변화하는 전력 시스템에서 새로운 시장을 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이 늘어날수록 전력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한 분산형 에너지 저장 기술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전력 시장 개방과 요금 체계 변화가 이뤄질 경우 전기차가 이동수단을 넘어 전력 저장 장치이자 에너지 거래 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