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배운 AI, 무기인가 나침반인가 [윤석빈의 Thinking]
||2026.03.16
||2026.03.16
인류는 지금 역사상 처음으로 '초거대 인공지능(AI)이 실시간으로 관측하고 학습하는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
최근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대응을 비롯해 중동과 동유럽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위기는 단순한 물리적 충돌을 넘어 거대한 '데이터의 폭발'을 야기하고 있다. 미사일의 궤적, 드론의 폭격 영상, 소셜 미디어에 쏟아지는 각국의 프로파간다와 시민들의 절규까지, 이 모든 것은 0과 1의 데이터가 되어 거대한 언어 모델(LLM)과 멀티모달 AI의 신경망 속으로 실시간 흡수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역사책이라는 정제된 텍스트로 후세에 전달됐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AI의 가중치(Weight)와 매개변수(Parameter)를 실시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참혹하고 혼란스러운 전장의 안개(Fog of War)를 '경험'한 AI는 향후 우리 산업과 일상에서 어떤 서비스로 진화할 것인가?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대규모 드론 및 미사일 공방전은 미래 AI 서비스가 직면할 극한의 환경을 미리 보여주며, 세 가지 명확한 기술적 교훈을 남겼다.
첫째, '초저지연(Ultra-Low Latency)' 기반의 자율적 의사결정이다. 음속을 돌파하는 탄도미사일과 수백 대의 드론 스웜(Swarm) 공격 앞에서는 인간 지휘관이 상황을 인지하고 개입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요격 우선순위를 0.1초 단위로 계산해 내는 방공망의 알고리즘처럼, 향후 B2B 엔터프라이즈 AI 역시 금융 크래시, 사이버 공격, 공급망 마비 등 촌각을 다투는 기업의 위기 상황에서 인간을 대신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는 '자율 에이전트(Autonomous Agent)'로 진화해야만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둘째, '멀티모달(Multi-modal) 데이터 융합'의 파괴력이다. 이번 충돌의 전황은 군사 레이더 신호뿐만 아니라 상업용 위성 열화상 이미지, 텔레그램에 올라온 시민들의 스마트폰 영상, 심지어 관련 국가 고위층의 암시적인 SNS 메시지가 융합되어 해석됐다. 이처럼 파편화된 이종(異種)의 비정형 데이터들을 실시간으로 결합해 입체적인 맥락(Context)을 도출해 내는 능력이 곧 미래 AI 서비스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셋째, 기만전(Deception)을 걸러내는 '디지털 검증력'의 필요성이다. 공격 전후로 소셜 미디어에는 과거 비디오 게임 영상이나 다른 지역의 화재 영상이 '실제 상황'으로 둔갑해 수백만 회 이상 공유됐다. AI가 이러한 기만성 데이터를 필터링하지 못한 채 학습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전쟁을 학습한 AI의 트라우마: ‘데이터 포이즈닝’과 ‘환각’
이는 곧 전쟁을 학습하는 AI가 마주한 가장 치명적인 위험성으로 직결된다. 현대전은 물리적 타격만큼이나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적의 사기를 꺾고 국제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고도로 정교한 딥페이크 영상과 가짜 뉴스가 전 세계 네트워크에 무차별적으로 살포된다.
만약 AI가 이러한 오염된 데이터를 여과 없이 학습한다면, AI 모델 자체가 심각한 편향성을 띠거나 치명적인 환각(Hallucination)을 일으키게 된다. 특정 국가의 선동에 오염된 AI는 향후 분쟁 조정이나 외교적, 비즈니스적 조언을 요구받았을 때, 객관적 중재자가 아닌 특정 세력의 대변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전쟁의 참상 속에서 트라우마(PTSD)를 겪듯, AI 역시 오염된 전쟁 데이터로 인해 인지적 왜곡이라는 '알고리즘적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와 교훈을 바탕으로, 살아남은 미래의 AI는 '결정적 지능(Decision Intelligence)'을 제공하는 전략 참모로 격상될 것이다.
예를 들어, 다국적 기업의 CEO는 아침 회의에서 AI에게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당사의 글로벌 공급망 중 어느 노선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으며, 이를 대체할 최적의 물류 경로와 예상 비용은 얼마인가?”
AI는 수만 가지의 전시 시나리오와 멀티모달 융합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공급망 재편 전략을 실시간 시뮬레이션해 제공할 것이다. 다만, 데이터 오염과 편향성에 대한 우려는 결국 '소버린 AI(국가 주권 AI)'의 가속화와 충돌로 이어질 것이다. 국가 안보 및 핵심 산업과 직결된 사안에서, 미국 빅테크의 AI나 중국의 AI가 도출한 지정학적 분석 결과를 다른 국가들이 맹목적으로 신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각국은 자국의 가치관, 안보 데이터, 그리고 자국에 유리하게 해석된 역사적 맥락만을 학습시킨 독자적인 AI 모델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미래의 AI 서비스 생태계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는 단일 체제가 아니라, 미국 중심의 AI, 중동의 AI, 중국의 AI 등 파편화된 다극 체제로 재편될 것이다. 각기 다른 진실을 말하는 AI들의 충돌, 즉 'AI 간의 이념 전쟁'이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로 부상할 것이다.
결론: 신뢰할 수 있는 AI(Trustworthy AI)를 향한 인프라 혁신
격동하는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AI 서비스가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선동의 확성기가 되지 않으려면, AI 기술의 패러다임 자체가 '성능 중심'에서 '신뢰 중심(Trustworthy)'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AI가 참조하는 데이터가 위조되지 않았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기술(Web 3.0 및 암호학의 융합), AI의 추론 과정을 투명하게 역추적할 수 있는 설명 가능한 AI(XAI),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사실 기반의 컨텍스트만을 주입하는 고도화된 검색 증강 생성(RAG) 기술이 미래 AI 서비스의 필수 요건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중동의 밤하늘을 가르는 미사일의 궤적을 데이터로 흡수하며 진화하고 있다. 오늘날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AI가 내일의 평화를 구축하는 객관적인 나침반이 될지, 아니면 갈등을 증폭시키는 파괴적 무기가 될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진실의 필터'를 AI에게 쥐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AI의 윤리적이고 객관적인 학습을 보장할 시스템적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윤석빈 트러스트 커넥터 대표는 서강대 AI·SW 대학원 특임교수로 36Kr 코리아 고문, 투이컨설팅 자문과 한국 경영학회 디지털 경영 공동위원장, 법무 법인 DLG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오라클과 한국 IBM 등 IT 업계 경력과 더불어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 산학협력 교수로도 활동했다.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인공지능보안 전공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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