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책임 공방’ 번진 현대엘리-쉰들러 악연… ISDS 8년 소송서 완승(종합)
||2026.03.14
||2026.03.14
정부가 스위스 엘리베이터 업체 쉰들러홀딩스아게(Schindler Holding AG, 이하 쉰들러)가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100% 승소했다. 정부는 쉰들러가 주장한 3200억원의 손해배상 책임에서 벗어났고, 8년간 소송 과정에서 지출한 법률 비용 96억원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오늘 새벽 2시 3분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이 사건 중재판정부는 쉰들러의 모든 청구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쉰들러, 처음에는 ‘백기사’…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노려
쉰들러는 세계 2위 엘리베이터 업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다. 쉰들러는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현정은 회장이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일 때 ‘백기사’로 처음 등장했다.
쉰들러는2006년 KCC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5.5%를 매입하며 2대 주주에 올랐다. 당시 쉰들러 측은 현대엘리베이터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제기되자 “현 회장을 비롯한 현대엘리베이터의 이사회 및 경영진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현 회장과 쉰들러 측 알프레드 쉰들러 회장은 함께 금강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쉰들러는 여러 차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노렸다. 한국의 엘리베이터 시장은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KCC와 현대상선(현 HMM)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를 동원해 재무적 투자자(FI)들과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상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대신, 지분 인수 가격보다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을 보전해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해운 업황 악화로 현대상선 주가가 급락했고, 현대엘리베이터는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수천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보상해야 했다.
쉰들러는 2014년 현 회장을 상대로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며 7000억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23년 3월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연이자까지 합치면 2700억원에 달한다.
쉰들러는 대법원 확정 판결 직후 곧바로 현 회장 지분을 대상으로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현 회장은 M캐피탈로부터 받은 대출금으로 손해배상금을 모두 납부하며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서 벗어났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 사업으로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으나, 파생상품 계약 때문에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그러자 여러 차례 유상증자를 실시해 부족한 자금을 확보했다. 쉰들러는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았고, 2012년 35%였던 지분율은 2013년 30.9%로 줄었다. 이후 증자가 계속되며 2022년 15%대까지 떨어졌다.
또 현대엘리베이터는 2015년 11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2050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했고, 2016년 그중 40%에 해당하는 820억원어치에 대해 매수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해 조기 상환했다. 같은 날 전환사채에서 콜옵션만 분리해 현 회장과 현대글로벌에 78억원을 받고 양도했다. 현대글로벌은 현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였다. 현 회장 측은 전환사채 일부를 직접 행사해 주식으로 전환했다.
◇쉰들러,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콜옵션 양도에 대한 한국 당국 조치 문제 삼아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가 현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실시됐으나 금융감독 당국이 이를 적절히 제재하지 않아 자신들의 지분이 희석되는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2016년 현대엘리베이터의 콜옵션 양도 역시 현 회장에게 유리한 가격으로 이뤄진 불공정 거래였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제재하지 않아 투자자 보호 의무가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쉰들러는 이 두 가지를 문제 삼아 2018년 ISDS를 제기했다. 그러나 중재판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금융 및 공정거래 감독 조치가 국제투자협정상 투자자 보호 기준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쉰들러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공정위,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조치는 자의적이거나 차별적이지 않은 합법적인 권한 범위 내에서 충분한 조사와 심사를 수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가 투자협정을 위반하지 않았으므로 국제법상 국가 책임이 성립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쉰들러의 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정성호 “정치 어수선한데 기쁜 소식 전하게 돼 매우 기뻐”
정 장관은 페이스북 글에서 이번 판정에 대해 “사기업 경영권 분쟁이나 주주 간의 사적 갈등을 국가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시도를 막아 국가의 재정을 지켜낸 성과”라고 했다.
이어 “법무부 국제법무국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 정부 대리 법무법인 등의 전문가들이 치밀하고 체계적인 대응으로 론스타, 엘리엇 승소에 이어 국제무대에서 다시 한번 승소한 쾌거”라며 “본안 심리까지 진행된 ISDS 중재사건 중 대한민국이 전부 승소를 거둔 역대 두 번째 사례”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브리핑을 시작하면서 “정치가 조금 어수선하고 이란 전쟁 때문에 국민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는데 기쁜 소식을 전하게 돼서 저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브리핑에는 법무부 서정민 법무실장, 조아라 국제투자분쟁과장, 국제투자분쟁과 소속 양준열 검사가 배석했다.
8년간 정부를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은 국제중재, 금융,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들로 특별 대응팀을 꾸렸다. 대응팀을 이끈 김준우(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는 “이번 판정은 대형 투자 분쟁에서 국가의 정당한 정책 판단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태평양은 지난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소송에서 정부가 승소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이준기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론스타 ISDS 소송에 이어 이번 쉰들러 소송에서 국가의 리스크 관리에 기여한 것은 우리 법인의 복합 위기 대응 전략을 다시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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