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이 쩔쩔맨다…‘슈퍼 을’ 올라선 삼성·SK하이닉스 [K-반도체 굴기下]
||2026.03.13
||2026.03.13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반도체 산업의 지형도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엔비디아와 AMD 등 글로벌 ‘설계 거물’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총수와 잇따라 독대하며 구애의 손길을 뻗는 배경에는 단순 비즈니스를 넘어선 ‘AI 혈맹’의 생존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 반도체는 이제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공급자가 아닌 글로벌 AI 인프라의 성패를 가르는 ‘슈퍼 을’로 올라섰다. 우리 기업이 메모리 공급망의 중심에 선 원동력과 위상을 높인 변곡점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갑’으로 불리는 엔비디아와 그 대항마 AMD가 이제 한국 반도체 기업을 향해 구애의 손길을 뻗고 있다. 과거 고객사로 공급을 위해 빅테크의 눈치를 보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 주도권을 쥔 ‘슈퍼 을’의 위치로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3월 16일(현지시각)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GTC 2026’은 이같은 권력 이동을 확인하는 상징적 무대가 될 전망이다.
이번 행사에서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Vera Rubin)’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칩에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4가 탑재된다. 현재 HBM4를 실제 양산해 AI 칩에 적용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제조사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이라는 점이 K-반도체 위상 변화의 동력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미국 마이크론이 차세대 제품인 베라 루빈용 HBM4 공급망에서 밀려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10일 마이크론의 공급망 배제설을 반박했지만 실질적으로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최고 사양의 HBM4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파트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좁혀진 분위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상 처음으로 GTC 현장을 방문하는 점도 예년과 달라진 메모리 기업의 무게감을 보여준다. 최 회장은 5일 미국 산타클라라의 ‘99치킨’에서 젠슨 황 CEO와 회동하며 HBM4 공급 확대를 포함한 포괄적 협력을 논의했다. AI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젠슨 황 CEO가 직접 한국 반도체 수장과 스킨십을 강화하며 ‘니즈’를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그간 엔비디아와 쌓아온 공고한 신뢰와 숙련된 양산 능력을 바탕으로 ‘퍼스트 벤더’의 자리를 굳힌다는 전략이다. 특히 HBM4를 활용해 대형언어모델(LLM)의 추론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 세션을 통해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AI 삼각 동맹’의 견고함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하며 ‘퍼스트 무버’ 타이틀을 거머쥔 삼성전자는 이번 GTC에서 메모리 설계부터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까지 일괄 처리하는 ‘턴키(Turn-key) 솔루션’을 강조할 계획이다. 송용호 DS부문 부사장이 발표할 ‘AI 팩토리’ 등 제조 혁신 플랫폼은 엔비디아 공급망 내 점유율 확대를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빅테크의 구애는 엔비디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리사 수 AMD CEO는 18일 한국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AMD의 최신 AI 가속기 ‘MI 시리즈’에 탑재될 HBM4 공급 확대를 요청하기 위함이다. AMD는 엔비디아 추격을 위해 삼성전자의 안정적인 공급 능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에 있어 AMD와의 협력은 단순한 매출 확대를 넘어선 전략적 카드다. AMD라는 강력한 우군을 확보함으로써 주력 고객사인 엔비디아와의 가격 및 물량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역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HBM4를 조기에 확보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면서 삼성전자의 협상력은 극대화되고 있다.
맞춤형 AI 반도체(ASIC)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구글, 아마존(AWS), 메타 등 자체 반도체를 설계하는 빅테크 기업은 각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을 핵심 부품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특정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AI 인프라 전반의 ‘표준’을 주도하는 공급자로서의 입지를 굳혔음을 의미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6년 이후 D램과 SSD 가격이 약 200% 급등했으며, 공급 부족이 2027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인한 공급 부족 현상은 메모리 제조사가 가격 결정권을 쥐는 판매자 우위 시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더이상 엔비디아라는 고객사에 끌려다니지 않고 공급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고객님만을 위한 맞춤 차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