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AI 메모리칩’ 설비전… 장기 수요 확보 관건
||2026.03.12
||2026.03.12
인공지능(AI)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전례 없는 생산능력(캐파) 확보 경쟁에 돌입했다. 기술 경쟁을 넘어 얼마나 많은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가 시장의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 글로벌 메모리 3사는 HBM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설비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AI 반도체 수요를 주도하는 엔비디아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HBM 확보 경쟁에 나서면서다. 특히 차세대 AI 가속기와 GPU에는 대량의 HBM이 필수적으로 탑재되기 때문에, AI 반도체 생산 확대는 곧 HBM 수요 증가로 직결되는 구조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차세대 메모리로 AI 서버와 고성능 컴퓨팅(HPC)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꼽힌다. 기존 메모리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와 대역폭이 크게 향상돼 대규모 연산을 수행하는 AI 시스템에서 사실상 표준 메모리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수요 증가 속도에 비해 생산 확대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HBM은 첨단 패키징 기술과 높은 수율 확보가 필요해 생산 공정이 복잡하고 투자 규모도 크다. 이에 따라 메모리 기업들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장기 공급 계약을 위한 ‘물량 경쟁’에 돌입했다.
실제 기존의 단기 공급 계약 중심 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1년 단위 계약 후 분기마다 가격을 협상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계약 종료 시점의 시세를 반영해 가격을 보전하는 ‘사후 정산’ 형태나 2년 이상의 장기 계약이 확대되는 추세다.
여기에 HBM 공급 부족 현상이 최소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대규모 설비 투자에 착수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거점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중심으로 HBM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평택 공장은 첨단 메모리 생산의 핵심 거점으로, 향후 AI 메모리 수요 대응의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생산기지, 미국 인디애나주를 연결하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투자 규모도 당초 약 15조원에서 21조원 수준으로 늘려 생산 능력 확충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현재 HBM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공격적인 설비 투자를 통해 시장 지위를 더욱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론 역시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을 발판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추진 중이다. 미국 아이다호주와 뉴욕주에 총 1000억 달러(약 130조원) 이상을 투자해 장기적으로 메모리 생산 능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정책과 맞물리면서 대규모 투자에 속도가 붙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향후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누가 더 빨리, 안정적으로 공장을 가동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평가한다. 현재 주요 메모리 기업들의 기존 공장 내 유휴 공간이 부족해 생산설비 증설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 확대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워 수급 불균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AI 투자 거품론’에도 데이터센터 확장과 AI 서버 수요 증가가 계속되는 만큼 메모리 시장의 성장세는 유지될 전망이다”라며 “단순히 기술 격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폭증하는 수요에 맞춰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생산 체제를 얼마나 빨리 구축하느냐가 향후 시장 판도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변상이 기자
differenc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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