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쌀’ 나프타 바닥 보인다... 장기전에 전방산업도 흔들리나
||2026.03.11
||2026.03.11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일주일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산업의 쌀’로 불리는 원료인 나프타의 수급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나프타 수급 차질은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불가항력’ 선언, 감산으로 이어지면서 설비 가동이 멈추는 셧다운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쟁이 한 달 이상 장기화되면 원료 수급 차질이 전방 산업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관련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최근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시설인 여천NCC가 처음으로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하면서 생산 중단 우려가 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불가항력 선언은 천재지변, 전쟁 등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으로 제품 공급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책임을 면하기 위한 조치다.
여천NCC의 불가항력 선언에 이어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에쓰오일(S-OIL) 등이 있는 울산 산업단지 화학사 중 일부가 공급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 산단 화학사들 역시 조만간 가동률 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불가항력 선언과 감산은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데 따른 조치로 분석된다. 이란이 3월 2일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후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와 원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원유에서 추출하는 나프타는 54%가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국내로 수입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아직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기자회견에서 “이란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고 말했지만 발언 직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되면 이 지역에서 단 1리터(ℓ)의 석유 수출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드러냈다. 이 때문에 전쟁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나프타 비축량이다.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이달을 고비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사들이 보유한 나프타 재고는 2주가량의 분량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의 경우 정부가 7개월 분량의 비축유를 보관하지만 나프타는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1~2개월 분량만 저장한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료 수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수급 차질이 지속되면 이달부터 불가항력을 선언하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의 불가항력 선언이 확산될 경우 전방 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의 원료인 에틸렌 등을 생산하는 기초 소재다. 다양한 산업계에 활용되는 만큼 불가항력 선언의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 시점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원유·천연가스·석유 제품들의 공급 차질이 가져올 연쇄효과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정유·화학 기업들은 공급 차질 장기화 변수와 생산 설비 가동률 조정 가능성 등 리스크를 염두에 둬야 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한편 나프타 수급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현재 추진 중인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 구조조정이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번 사태로 석유화학사들이 생존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설비 가동 중단, 설비 통합 등을 두고 복잡한 이해관계로 속도를 내지 못하던 사업 재편안 마련이 이번 사태로 석유화학사들이 생존 문제에 직면하면서 추진력을 얻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석유화학사들은 조만간 사업 재편안을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은 업계 첫 사업 재편안을 제출해 올해 2월 정부로부터 승인받았다. 울산, 여수 등 산단에서도 구체적 재편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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