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흔든 동북아 지정학… 대만 최고위급 방일에 끓어오르는 中 “얄팍한 술수”
||2026.03.10
||2026.03.10
1972년 일본과 대만이 공식 외교 관계를 단절한 이후 54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7일 대만 최고위급 인사가 공개적으로 일본 땅을 밟았다. 표면적으로 내세운 방문 목적은 자국 야구 국가대표팀 경기 관람이었다.
이 짧은 일정이 스포츠 행사를 넘어 동북아시아 지정학을 뒤흔드는 거대한 외교적 파장을 낳고 있다. 중국 정부는 9일(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에서 대만 행정원장 방일 소식에 즉각 거친 언사로 맹비난을 쏟아냈다. 일본을 향해서는 강력한 보복을 경고했다.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걷던 중국과 일본 관계가 야구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나 한층 복잡한 수 싸움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발단은 줘룽타이 대만 행정원장 도쿄행이다. 행정원장은 대만 정부 부처 전반을 총괄하는 총리 격 직급이다. 총통과 부총통 유고 시 권한을 대행하는 국가 서열 3위 핵심 요직이다. 대만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줘룽타이 행정원장은 지난 7일 오전 일본 도쿄에 도착해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만 대 체코 경기를 관람했다. 당시 주일 대만 대사 역할을 수행하는 리이양 타이베이 주일경제문화대표처 대표와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출신 리양 운동부 장관이 관중석에서 그를 수행했다. 줘룽타이는 대만 대표팀이 14대 0으로 크게 앞서자 6회 말 즈음 일찍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이후 도쿄에 약 5시간가량 머문 뒤 전세기로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교 이후 현직 대만 행정원장이 대외적으로 일정을 알리며 일본을 찾은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2004년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유시쿤 당시 행정원장이 태풍을 피해 오키나와 공항에 비상 착륙해 잠시 머문 적이 있지만, 정상적인 외교 방문은 아니었다. 2022년 라이칭더 당시 부총통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장례식에 조문한 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일 공개 행보였다.
이례적 행보에 중국은 발칵 뒤집혔다. 중국 지도부는 사적인 외유를 넘어 중국이 추구하는 핵심 원칙에 정면으로 맞서는 도발로 규정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대만 행정원장 방문에 악의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만 측이 은밀하고 교활하게 일본으로 도피해 독립을 추구하고 도발을 일삼는 얄팍한 술수를 부렸다”는 원색적인 평가를 내놨다.
중국은 대만을 넘어 일본에도 분노를 표출했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 정부가 이러한 무모함을 용인한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라며 “모든 결과는 일본 측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사태 직후 중국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베이징 주재 일본 대사를 초치해 공식적으로 거세게 항의하며 외교적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중국이 이토록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최근 급격히 악화한 중일 관계가 핵심 뇌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치적, 안보적 긴장감이 팽팽한 상황에서 성사된 대만 서열 3위 방일은 중국 안보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기폭제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경기가 벌어진 도쿄돔 현장 분위기 역시 대만을 향한 중국 심기를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통상적으로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대만은 중국 압력에 밀려 자국 정식 국호 대신 차이니즈 타이베이라는 명칭을 강제로 사용한다. 관중석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거나 정식 명칭이 적힌 깃발을 노출하는 행위조차 엄격하게 금지된다.
그러나 이번 야구 대회에서는 4만 명이 넘는 관중이 가득 찬 경기장 곳곳에서 팀 타이완 문구가 적힌 응원 도구를 펄럭였다. 경기 주최 측인 일본은 이를 강압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사실상 묵인했다. 대만 야구팬 린쯔후이는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차이니즈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당당하게 국제 무대에서 경쟁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당사자인 대만과 일본은 표면적으로 확전을 경계하며 철저한 선 긋기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기하라 미노루 일본 관방장관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대만 행정원장이 일본 정부 당국자와 어떠한 형태 만남이나 접촉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철저히 사적인 성격 방문이며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개입하거나 논평할 사안이 아니라는 해명이다. 줘룽타이 행정원장 역시 타이베이에서 출국하기 전 자국 취재진에게 “오로지 대표팀 응원을 위한 목적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이번 방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FT는 익명을 요구한 대만 고위 관계자 입을 빌려 치밀하게 기획된 스포츠 외교 전술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대만이 일본이라는 든든한 우방과 스포츠를 매개로 우회적으로 밀착하며 중국 포위망을 돌파하려 한다는 해석이다. 반면 중국은 자국 영토 주권을 침해하는 어떠한 시도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압박 전술로 응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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