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AI는 개성·감정·스토리 없어…협업하면 다른 것 보여줄 것"
||2026.03.09
||2026.03.09
[디지털투데이 손슬기 기자] 9일 서울 포시즌스호텔 아라홀 현장. 10년 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알파고와 역사적인 대국을 벌였던 이세돌 9단이 다시 바둑판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동료로서 만났다.
음성 명령만으로 20여분 만에 바둑 AI를 완성하고 직접 대국까지 벌였다.
AI 스타트업 인핸스가 마련한 'AI 협업 시대 선언' 행사에서 이 9단은 인핸스 AI OS를 활용해 음성 바이브코딩으로 바둑AI 기획부터 배포까지 전 과정을 자율 수행하는 장면을 시연했다.
인핸스 AI OS는 앤트로픽·구글·블랙포레스트랩스 등 외부 AI 모델을 조합해 전문 에이전트들이 협력하는 멀티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플랫폼이다.
이 9단이 인핸스 AI OS를 활용하는 과정은 간단했다. "바둑이 너무 어려워서 입문자가 포기한다. AI 선생이 있으면 어떨까", "처음엔 9줄 바둑부터 가르치면 좋겠다" 등 이승현 인핸스 대표와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이후 AI OS가 대화를 실시간 분석해 요구사항을 추출하고, 5개 에이전트가 순차적으로 업무를 이어받는 방식으로 ▲온톨로지 기반 개인화 ▲PM 에이전트 리서치·기획 ▲디자인 에이전트 시안 도출 ▲코딩 에이전트 코드 작성 ▲OS 에이전트 배포까지 20여분간 순서대로 이뤄졌다.
이같은 가능한 배경엔 온톨로지가 있다. 온톨로지란 특정 도메인 지식과 관계를 구조화해 AI가 맥락을 이해하도록 돕는 지식 표현 기술이다. 인핸스는 행사 전 오브젝트 133개, 링크 타입 156개, 속성 99개짜리 이세돌 지식 지도를 미리 구조화해뒀다고 한다. 이 9단 바둑 철학, 교육 관심사, 주요 발언 맥락이 모두 담겼다는 설명이다.
OS 에이전트는 두 사람 대화를 분석해 요구사항을 추출하고 온톨로지에 저장했다. PM 에이전트가 위키피디아·깃허브·아마존 도서·유튜브까지 100여건을 탐색해 기획서를 완성했다. 이 9단이 말했던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점수나 착수 기록도 함께 보여줄 수 있게" 등 음성 답변이 그대로 반영됐다.
디자인 에이전트는 이미지 생성 모델 3종에 시안을 동시 의뢰했고, 이 9단은 구글 제미나이 3.1 플래시 기반 나노바나나 2가 만든 시안을 골랐다. 코딩 에이전트는 앤트로픽 클로드 오퍼스를 엔진으로 HTML·자바스크립트로 앱을 구현했다. 오픈소스 바둑 AI 엔진을 연동해 19줄·9줄 모드, 수읽기 추천, 형세 판단 기능까지 탑재됐다. OS 에이전트가 완성된 앱을 화면에 띄우자, 이 9단이 별도 수정 없이 곧바로 대국에 나설 수 있었다.
이 9단은 이 과정을 두고 "바이브 코딩을 저도 짧게 경험해봤다. 근데 벽에 부딪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쉽지가 않더라. 근데 지금 이거는 사실상 제가 한 게 아무것도 없지 않나"라고 했다.
10년새 발전한 컴퓨팅 능력이 원활한 시연을 뒷받침했다. 2016년 알파고는 CPU 1920개와 GPU 280개를 동원했다. 이날 바둑 AI가 돌아간 하드웨어는 NVIDIA DGX 스파크 한 대뿐이었다.
◆실제 대국 "사람이 못 이기는 그림...알파고는 능가했다 봐야"
앱이 완성되자 이 9단이 직접 대국에 나섰다. 이 9단이 흑돌, AI가 백돌을 잡았다. 이 9단은 대국 도중 판세를 분석하며 "솔직히 지금 나와 있는 최고 성능의 AI 느낌은 아닐지라도, 개인적으로 사람이 이기기 힘든 수준으로 두는 것 같다. 이거는 사람이 못 이기는 그림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AI의 포석 방식을 풀어 설명했다. "AI는 이 돌들을 다 죽여버렸지만 집은 되게 좋다. 사람이면 이런 걸 죽이지 않는다. 발전 가능성을 따져보면 흑돌은 극히 제한적이다. 백은 이쪽의 발전 가능성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이게 AI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AI가 단기 이득보다 장기 가능성을 앞세우는 기풍을 설명한 것이다.
이번 대국은 학습용 바둑 모델 구축이 목적인 만큼 시연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이 9단은 알파고에 1승 4패로 패한 후 은퇴해 집에서 혼자 AI와 대국한 경험도 꺼냈다. 그는 "AI는 20초, 저는 무제한. 아주 공정한 대국을 했는데 솔직히 정말 오랜 시간을 걸쳐서 1수도 안 둘 때도 있었다. 바둑판 앞에서 무제한으로 대국을 해도 그래봤자 안 되겠구나, 무슨 수를 써도 못 이기겠다는 벽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 9단은 "그 당시 알파고 수준보다는, 그 수준은 넘어섰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며 "기본적인 느낌으로는 사람이 이기기는 좀 어려운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국 중 바둑 선생 기능이 실시간으로 수 해설을 제공해 이 9단이 감탄하기도 했다. AI가 "귀부터 차지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흩어진 돌들이 서로 연결되면 단단한 성을 쌓은 것처럼 안전해집니다" 등 조언을 건넸다.
◆"AI는 개성·감정·스토리 없어...협업 대상"
인핸스 측은 행사 목적을 "인간이 AI에게 졌다는 2016년 서사를, 인간이 AI를 만든다는 서사로 뒤집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9단은 지난 10년간 AI 발전에 대해 "진짜 10년인데, 정말 빠르게 변하는 것 같다"며 "3~4년 전만 해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못했다. 알파고 이후 새로운 게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변화가 나온 다음부터의 속도와 파괴력은 생각보다 오히려 컸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9단은 AI의 한계를 냉정하게 짚었다. 그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상대방과의 기억, 감정들이 한수 한수에 다 들어간다. 그에 대한 책임도 지는 것이고. AI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성·감정·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효율적으로 두는 것이다"고 했다.
이어 "AI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우리 인간만의 영역이 있다. 지금처럼 AI와 협업을 했을 때는 정말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바둑 선생 기능에 대해서는 "AI가 바둑을 잘 두는 건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선생 역할이 더욱더 놀라운 것이 아닌가"라면서도 "아직 갈 길은 좀 남아 있다. 시간이 좀 있었다면 훨씬 더 좋은 형태가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앤트로픽·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가 공식 스폰서로 참여했다. 인핸스는 삼성전자·P&G·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누적 투자액 295억원을 유치했다. 2025년 팔란티어 스타트업 펠로우십에 국내 유일 기업으로 선정됐고, 글로벌 웹 에이전트 벤치마크 '온라인-마인드투웹(Online-Mind2Web)'에서 커머스 분야 1위를 기록했다.
이승현 인핸스 대표는 "알파고 대국이 인간과 AI의 경쟁을 상징했다면, 이제 AI는 인간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협업 파트너가 되고 있다"며 "온톨로지·에이전틱 AI·대형행동모델(LAM)을 표준화해 전 세계 기업이 에이전틱 AI와 협업하는 AI OS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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