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번역되지 않는 맛-김치와 피클, 세계가 발견한 ‘발효의 시간’
||2026.03.04
||2026.03.04
“김치가 익었다(ripe?)”, “배추 숨이 죽었다(lettuce died?)”, “장이 살아 있다(alive sauce?).”
직역하면 어딘가 어색해지는 이 표현들은 한국인의 밥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익다’는 ‘properly fermented’, ‘숨이 죽는다’는 ‘the cabbage softens and releases moisture’, ‘장이 살아 있다’는 ‘rich in active cultures’처럼 길게 풀어 설명해야 비로소 의미가 닿는다. 김치를 담그는 엄마의 ‘손맛’ 역시 단순한 ‘hand taste’가 아니라 ‘flavor shaped by the maker’s 때 한국식 표현의 의미가 전달 된다. 한국의전달된다.는 맛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시간을 번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밥상은 갓 지은 음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김치와 된장, 간장, 젓갈처럼 시간을 견딘 발효 반찬이 한 끼의 중심을 만든다. 서구에서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거트 헬스(Gut Health)와 거트 플렉스(Gut flex)라는 개념 역시 한국인에게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수천 년 동안 발효 음식과 함께 장 속 미생물과 공존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세계 식탁에서 ‘발효‘인 퍼멘테이션(fermentation)은 더 이상 저장 기술이 아니다. 건강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프리미엄 미식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그 흐름의 중심에서 김치와 함께 다시 주목받는 음식이 있다. 바로 Pickle(절임)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어에서 pickle은 음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I’m in a pickle”이라고 하면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는 의미가 된다. 17세기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The Tempest)’에서 술에 취해 엉망이 된 상태를 두고 “How cam’st thou in this pickle?(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거야?)”이라는 대사가 있다. 당시 소금물에 오래 담가 두던 절임처럼,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태를 빗댄 표현이었다. 장독대 속 재료처럼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태를 빗댄 표현으로 절임의 이미지가 난처함의 은유로 사용된 것이다.
피클은 대략 19세기 후반 강화도 조약 이후 빵, 버터, 햄, 피클과 같은 서양 음식이 들어오면서 한국의 발효 문화와 만났다. 김치와 피클은 모두 채소를 오래 보존하려는 인간의 지혜에서 시작됐다. 소금이 핵심 역할을 하고 지역의 기후와 역사 속에서 발전했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완성 방식은 다르다. 서양식 피클이 식초로 산미를 빠르게 더하는 ‘조리된 절임’이라면, 김치는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젖산 발효를 기다리는 ‘살아 있는 절임’이다. 시간이 직접 요리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pickled cucumber(절인 오이)로 번역되지만 김치는 저장 기술이 아니라 문화가 되었기 때문에 ‘Kimchi’는 번역되지 않은 채 세계 식탁의 언어가 되었다.
피클의 역사 역시 깊다. 네덜란드어 페켈(pekel), 즉 ‘소금물’에서 유래한 절임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해 클레오파트라의 식탁과 로마 군인들의 전투 식량, 콜럼버스의 항해까지 인류의 이동과 생존을 함께했다. 오랫동안 햄버거 옆 조연이었던 절임이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티저널(artisanal) 절임이 빠르게 성장하며 지역성과 장인의 손길을 강조한 미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깻잎 장아찌와 간장 절임, 전통 장류 같은 한국식 발효 음식이 등장했다. 단순 피클이 아니라 퍼멘티드 피클(fermented pickle), 살아 있는 절임으로서다. 거트 헬스(gut health)와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된장과 간장은 소이 퍼멘테이션(soy fermentation)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슈퍼푸드가 되고 있다. 해외 소비자들에게 장독대는 이제 오래된 저장 공간이 아니라 프리미엄 퍼멘테이션 랩(premium fermentation lab)처럼 보인다. 김치를 담그는 행위 역시 레시피(recipe)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 수육과 함께 김장을 하는 ‘의식(ritual)’이 된다.
결국 한국의 발효 언어는 맛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시간을 번역하는 언어다. 김치가 기다림 속에서 익어 가듯, 피클 역시 소금물과 산성 속에서 시간을 견디며 완성된다. 방식은 달라도 두 음식 모두 시간이 맛을 만든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서두르지 않는 기다림과 변화의 과정이야말로 가장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김치를 담그는 과정이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 즉 리추얼(ritual)이 되듯 발효는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오래 시간을 들일수록 깊어지는 발효의 원리처럼, K-Food의 진짜 경쟁력은 레시피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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