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까지 현지 생산 압박… 현대·기아 전기차 공장 가동률 비상
||2026.02.23
||2026.02.23
유럽연합(EU)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요건을 대폭 강화할 전망이다. 중국산 저가 전기차를 겨냥한 조치로 해석되지만, 유럽을 핵심 시장으로 삼은 한국 완성차 업계 역시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현지 생산 요건이 강화될 경우 전기차 생산의 ‘탈(脫)한국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25일(현지시각) 전기차가 각국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차량 부품 가격 기준 최소 70%를 EU 역내에서 생산·조달하도록 하는 초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초안에는 배터리를 제외한 부품 가격의 70% 이상을 EU산으로 충당하고, 완성차 역시 역내에서 조립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도 핵심 구성 요소를 EU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공공기관 구매·리스 차량에도 동일 기준이 적용된다.
EU는 이른바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통해 중국의 저가 전기차 공세를 견제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자동차 업계는 내수 둔화를 돌파하기 위해 수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BYD는 2025년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전년 대비 141.8% 증가한 62만7000대를 판매하며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유럽 내 중국 브랜드 점유율도 2019년 0.5%에서 2025년 11월 12.8%로 상승했다. 5년 사이 25배 이상 확대됐다.
업계는 이러한 점유율 급증의 배경으로 배터리와 핵심 부품을 아우르는 수직계열화를 지목한다. 원가 절감을 기반으로 한 가격 경쟁력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는 평가다. EU가 보조금을 매개로 공급망을 역내에 묶어두려는 것도 가격 경쟁에서 밀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단순한 통상 조치를 넘어선 산업 전략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유럽판 IRA는 중국산 저가형 전기차의 공세를 차단하는 동시에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현지 생산을 확대해 일자리와 수익을 늘리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유럽판 IRA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 업체에도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로 인한 전기차 수요 감소에 대응해 유럽을 핵심 성장 시장으로 재설정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보조금 지급 기준이 강화되면 생산 현지화와 공급망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현대차와 기아는 ‘아이오닉 3’와 ‘EV2’ 등을 유럽에 투입해 소형부터 대형까지 라인업을 확대하고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 시장 확대를 기반으로 전기차 누적 판매 100만대 달성도 가시권에 들어온 상태다.
다만 보조금 요건이 현실화될 경우 가격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현지 생산 확대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로 꼽힌다. 현재 일부 모델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아이오닉 5·6·9과 EV3·5·9, PV5 등 핵심 차종 상당수는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구조다.
유럽의 보조금 기준이 변경되면 생산 현지화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공장 가동률이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는 미국 전기차 보조금 폐지 이후 나타난 생산 재편 흐름과 유사하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기차 세액공제를 앞당겨 폐지하면서 현대차·기아는 미국 생산 물량을 대폭 확대했다. 그 여파로 현대차는 2025년 아이오닉 5와 코나 일렉트릭을 생산하던 울산 1공장 12라인 가동을 12차례 중단했다.
해외 물량 감소로 생긴 공백을 내수 시장이 메우기 어렵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미국 물량에 이어 유럽 물량까지 축소될 경우 국내 전기차 생산 능력이 과잉 설비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교수는 “현대차·기아가 울산 EV 공장과 화성 EVO 플랜트 등 국내 전기차 생산 기지를 구축 중인 상황에서 해외 생산 비중이 확대되면 국내 생산 증가 여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고용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판 IRA 대응을 위해 생산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아틀라스(Atlas) 등 로봇 도입을 통해 국내 생산 단가를 낮추는 대응 전략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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