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빅터 차 “‘안미경중’의 시대는 갔다…韓·美·日-G7 집단 협정만이 中 견제할 유일한 대안”
||2026.02.23
||2026.02.23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이 약 8년 만에 방중 일정을 소화하면서 한중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창 국무원 총리,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과 잇달아 회담했으며, 2026년 양국 관계를 전면 복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중 관영 매체는 양국 관계가 단순 무역 이상의 집약적 협력 단계로 진입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미국 측 시각은 엇갈린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지난 22일 외교·안보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서 이러한 장밋빛 전망이 일시적인 현상에 가까울 뿐, 언제까지나 유효하지는 않을 것이란 경고를 내놨다. 중국은 언제든 한국을 향한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 들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은 미국·일본 등 협력국과의 공조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
조선비즈는 빅터 차 석좌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전략과 향후 방향성에 대한 제언을 구했다. 다음은 차 석좌와의 일문일답.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처음 수교를 맺었을 당시만 해도 이른바 ‘안미경중’ 전략은 현실성이 있었다. 한국이 기술·산업 측면에서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으며, 양국 간 경제가 상호보완적 구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은 첨단 부품과 자본을 공급하고, 중국은 거대한 생산기지 겸 소비시장을 제공하는 구도가 성립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반도체·배터리·전기차·정보통신 등 핵심 첨단 사업 대부분에서 중국은 한국의 직접적인 경쟁자로 부상했다.
미국과의 관계도 안보 분야 이상으로 상당 부분 진화했다. 한국 기업들은 직전 약 10년간 배터리 공장, 반도체 파운드리, 핵심 광물 및 첨단기술 분야 투자를 중국이 아닌 미국에 집중해 왔다. 법적·제도적 안정성과 장기적 안보 환경을 고려할 때 미국이 더 예측 가능한 투자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미국도 관세 문제 등에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미래 전략 산업의 핵심 축은 미국과의 협력 속에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이를 종합하면, 경제와 안보를 명확히 이분화해 각각 중국과 미국에 맡기는 분업 전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한국이 이들과의 관계를 재설계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한중 관계는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한국에 ‘조용한 제재’를 재현할 수 있는 이유는.
“외형상으로 완화 흐름을 보이더라도, 중국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언제든 비공식적 경제 보복을 재가동할 수 있다. 중국의 조용한 제재는 ▲통관 지연 ▲위생·환경 규제 강화 ▲관광 비자 제한 ▲특정 기업에 대한 세무·소방 점검 강화 등 세계무역기구(WTO)에 저촉되지 않는 교묘한 형태로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다. 2016~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당시에도 중국은 엔터테인먼트·화장품·관광 산업에 제재를 가했고, 2021년 10월에도 요소수 수출을 중단하는 등 특정 사안에 대한 불만을 경제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중국은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면서도 상대국 기업과 산업에 실질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을 이미 축적해 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원자력 추진 잠수함(핵잠)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이 제재를 되풀이하는 트리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가 탄력을 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겉으로는 관계 개선 메시지를 발신하면서도, 선택적으로 압박 카드를 꺼내는 이중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양국 간 메시지의 톤이 좋아졌다고 해서 구조적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은 외교적 수사와 별개로 공급망 다변화와 우방 간 공조 강화를 추진, 경제적 취약성을 줄이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중(對中) 정책에 대한 평가는.
“이 대통령은 예상보다 훨씬 ‘실리적(pragmatic)’인 방향으로 대중 정책을 펼치고 있다. 앞서 워싱턴에서는 이 대통령이 진보 진영 출신이라는 점에서 중국에 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나, 실제로는 미국과의 전략적 밀착을 유지하면서 균형을 관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최근 한중 정상회담에서 관계 복원을 선언, 소비재와 서비스업 등에서 협력 범위를 넓히기로 합의했으나 투자 규모나 산업 범위는 미국 대비 대폭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반도체·배터리·원전 등 핵심 산업 분야는 미국과의 협력 틀 안에서 투자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이념이 아닌 국익과 구조적 환경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중국에 더욱 강경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표면적으로 강한 비판의 메시지를 내는 것만이 좋은 전략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안정적인 한중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실제로 한미 동맹을 심화하는 방식으로 외교 관계를 조율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략이 오히려 중국의 긴장감을 조절하고 유리한 외교적 입지를 선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 대통령과는 달리 중국에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일본이 개입할 수 있다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섣부른 제재를 가한 것은 중국 정부의 전략적 오판이다. 오히려 중국이 일본을 제재하면서 다카이치의 정치적 위상이 격상됐고,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강경 보수 내각이 탄생하게 됐다. 중국이 다카이치의 발언을 그냥 넘겼더라면 상황은 충분히 달라졌을 수 있다. 제재 이전 다카이치는 일본 정치 지형에서 지금만큼의 단단한 기반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즉각적인 제재가 다카이치에게 역으로 힘을 실어준 셈이다.”
―미국, 일본, 호주 및 G7 국가들과 집단 협정을 조직해 중국의 경제적 침략을 저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상호방위조약(5조)처럼 ‘한 국가에 대한 강압이 모든 국가에 대한 강압으로 간주돼야 하며, 이에 대해 자동적 보복이 이뤄져야 한다’는 협정을 체결한다면 중국의 경제적 횡포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EU 차원의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공유하고 있는데, 동북아와 인도·태평양에는 아직 이러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이 미국·일본과 함께 이를 주도하고, G7 중심으로 호주 등 중견국과 결합한다면 억지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선택지도 아니다. 특히 미국은 2027년 G7 정상회의 의장국인 만큼, 이 자리에서 협력의 틀을 주도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맞설 ‘레버리지(지렛대)’ 형성 기회를 상시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난관도 예상된다. 각국의 대중 경제 의존도와 국내 정치적 상황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중국의 보복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강력한 공동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 맞설 이외의 대안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 억지 장치가 없다면 한국과 일본, 필리핀 등은 언제든 중국의 경제적 압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미국은 연일 우방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신뢰할 만한 파트너인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 리스크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관세를 인상하겠다는 위협 등은 동맹국 입장에서 불안 요인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전통적 외교·안보 관료 시스템의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 또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이 완전히 안정적이고 일관된 파트너라고 규정하는 것은 섣부른 단정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중요한 안보 동맹이자 미래 전략 산업 협력의 핵심 축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명과 암을 파악, 위험을 최소화하고 기회는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예컨대 조선 협력과 핵잠 협력 등의 사안은 한·미 동맹을 질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등 EU 국가들 또한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돈로주의(도널드 트럼프+먼로주의)를 견제, 중국과 밀착하는 행보를 최근 들어 보이고 있으나 이는 전략적 헤징(위험 분산)의 차원에 더 가까워 보인다. 미국의 불확실성은 커졌지만, 그럼에도 틈새에서 기회를 발굴한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과 미국은 관세 논의, 쿠팡 사태 등으로 마찰을 빚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신속한 대미 투자를 촉구하면서 양국 합의에 따른 관세율 15%를 25%로 높이겠다고 경고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 펀드의 집행 지연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자금이 어떤 산업과 기업에 투자될지 구체적인 조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한국 의회에서는 관련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확대됐다.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투자 자금의 활용 방안에 대한 조율이 명확히 이뤄졌으며, 부처 간 논의도 신속히 이뤄졌다는 차이가 있다.
일각에서는 쿠팡 사태 또한 관세 재인상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 자체가 핵심 변수가 됐을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한미 FTA 이후 일부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한국의 규제가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적용된다는 불만이 누적돼 왔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쿠팡에 대한 제재 논의가 나오자 미 행정부가 이를 기존의 우려와 연결 지어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방중하면 어떤 안건이 다뤄질까.
“핵심 의제는 무역과 대만 문제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 불균형 축소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중국이 미국산 항공기, 대두 등 미국 제조업·농업에 직접 도움이 되는 품목을 더 많이 구매하도록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농가와 산업계에 가시적 성과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중국 측에서는 대만 문제가 가장 민감한 의제가 될 것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회담에서 미국의 대만 방어 공약을 약화하거나 전략적 모호성을 흔들 수 있는 발언을 끌어내는 데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반해 북한 문제는 언급은 될 수 있으나 핵심 의제로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북핵 문제나 미·북 접촉이 정상회담의 초점을 분산시킬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다루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인도적 사업에 대해 제재 예외를 승인한 또한 북한의 반응을 탐색해보려는 유연한 신호에 가까울 뿐, 대북 정책 재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현 시점 한국 정부에 주어진 가장 시급한 외교적 과제는.
“대미 투자 집행이 가장 시급하다. 연간 200억달러 규모로 계획된 투자 펀드를 어떤 분야에 우선 배분할지 명확히 해야 한다. 지난해 발표된 한미 공동 팩트시트가 실제 이행될 경우 한미동맹은 질적 변화를 꾀할 수 있지만,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양국 신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과 합의한 사안을 현실화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본 인터뷰는 20일 미 대법원의 상호 관세 판결 이전 진행됐습니다.)
고객님만을 위한 맞춤 차량
